바그다드가 함락되자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단기 승부를 장담했던 개전 초기의 호언이 빗나갔을 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 과는 전혀 딴모습이다.럼스펠드는 바그다드 함락을 베를린 장벽과 철의 장막의 붕괴에 비유하는가 하면, “사담 후세인은 히틀러 스탈린 차우셰스쿠를 따라 잔인한 독재자가 걸어간 실패의 신전에 자리 잡게 됐다”고 기염을 토했다.
전황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초기작전 의 실패를 지적하는 기자들에게화를 냈고, 군 내부에서 조차 그가 전문가의 견해를 묵살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왔던 게 엊그제 일이다. 전쟁이나 선거 등은 이겨놓고 봐야 한다는게 만고의 진리임이 새삼 확인 된 셈이다.
■럼스펠드의 모습을 보면서 베트남 전쟁의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방장관을 생각해 본다. 베트남 전쟁 당시 ‘매파 중매파’였던 그는 1963년부터 69년까지 국방장관으로 있으면서 베트남 전쟁을 주물렀다. 하지만 맥나마라는 95년 회고록에서 베트남 전쟁이 잘못된전쟁이었다고 참회했다. 그는 회고록을 펴낸 이유가 변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극적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 라고 말했다. 실제로 TV 인터뷰에나와서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맥나마라의 참회에 대해서는 물론비난 여론도 많았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해 놓고선, 뒤늦게 딴소리를 한다는 것 이었다.
■미국의 승리로 끝난 이라크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 할 수는 없다. 럼스펠드는 일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맥나마라는사실상 패장이나 다름없다. 럼스펠드는 이라크 군정을 지휘하면서 앞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맥나마라는 베트남 전쟁이 진흙 수렁에 빠진데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전쟁 등 수 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버린 대사건에 대해서는 세월이 지나면 준엄한 역사의 심판이 내려진다는 사실이다.
■맥나마라는 부시 행정부에 미국 일방주의가 가져올 재앙을 여러 차례 경고 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 등 다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이를위해 유엔의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對)이라크 정책은 맥나마라의 충고와는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럼스펠드도 자리에서 물러나면 맥나마라처럼 회고록을 쓸지 모른다. 그가 회고록에서 이라크 전쟁을 어떻게 평가하는 처지가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병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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