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4월12일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蔣介石)가 상하이의 노동자 무장대(武裝隊) 와 상하이 총공회(總工會)를 무력으로 해산하고 공산주의자들을 무차별로 학살하며 반공쿠데타를 일으켰다. 제1차 국공합작을 끝장낸 이 쿠데타를 상하이 쿠데타 또는 4·12 쿠데타라고 부른다. 상하이 쿠데타는 1937년의 제2차 국공합작 때까지 10년간 이어질 국공내전의 출발점이 되었다.상하이 쿠데타로 막을 내린 제1차 국공합작은 연소(聯蘇)·용공(容共)·부조농공(扶助農工)을 내건 쑨원(孫文)의 국민당과 반(反)군벌·반제국주의 민족혁명이라는 대의(大義)를 국민당과 공유했던 공산당 사이에 1924년 이뤄졌다. 공산당원이 당적을 보유한 채 개인 자격으로 국민당에 입당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이 통일전선은 실제로 국민당의 북벌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국공합작 이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은 크게 힘을 얻었고, 상하이 쿠데타 직전인 1927년에는 우한(武漢)에 혁명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다.
국공합작 발족 이듬해 작고한 쑨원에 이어 국민당 지도자가 된 장제스는 좌파의 세력 확장에 위기감을 느꼈다. 제국주의 열강들도 마찬가지였다. 1927년 3월 공산군이 난징(南京)을 점령하자 영국·미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의 함대는 난징을 무차별로 포격해 공산당의 기세를 꺾은 데 이어, 거액의 자금을 국민당 우파에게 건네며 반공 투쟁을 북돋았다. 그러니까 장제스의 쿠데타는 민심을 공산당에 빼앗기고 있다는 조바심과 제국주의 열강의 지원이 결합해 이뤄진 것이다. 상하이 쿠데타로 큰 타격을 입은 공산당은 농촌으로 파고 들어가 토지 혁명을 추진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한편, 마오쩌둥(毛澤東)을 지도자로 장시성(江西省)에 중화소비에트를 수립해 장제스의 난징 정부에 대항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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