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붕괴되자 아랍 지도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새로운 중동 질서의 개편 과정에서 희생양이 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반미의 기치를 높이 내건 시리아 리비아 이란 등은 물론 전통적인 친미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 등 대부분의 아랍 지도자들에게 해당되는 걱정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미국에 의한 인위적인 질서 개편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새로운 중동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새로운 중동 질서란 표면적으로는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의 수립과 확산을 의미한다. 먼저 이라크에서 토대를 마련한 후 전체 아랍으로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이란을 미국의 통제권내에 편입시키는 것은 물론, 껄끄러운 전통 우방과의 관계도 재정립한다는 생각이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 전부터 "이라크 해방을 계기로 중동지역 전체에서 민주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혀 전쟁을 통해 도미노식 질서 개편을 추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미국의 지도부가 최근 되풀이 해서 밝힌 불량국가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론은 미국의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유용한 수단이 된다. 이라크 지도부의 도피를 돕고, 대량살상무기를 빼돌리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 향후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10일 미국이 이라크전 이후에 다른 나라에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아랍 지도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또 다른 압력은 바로 국민이다.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아랍 정권들은 한결같이 민주주의와 개혁을 요구하는 일반 국민의 정치적 압력을 받게 됐다.
아랍 민중들은 전쟁 기간 반전시위를 통해 그 동안 억눌려 온 정치 의식을 확인했고, 대중의 힘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랍 지도자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초래할 후유증보다 내부의 정치적 도전을 더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세습왕정 또는 권위주의 장기 독재체제가 대부분인 역내 국가들이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아랍 지도자들은 종전 후 이라크가 이른 시간 안에 안정과 질서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혼란의 도미노 현상이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암만=김용식특파원 jawohl@hk.co.kr 김철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