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케이건 지음·홍수원 옮김 세종연구원 발행·1만원엠마뉘엘 토드 지음·주경철 옮김 까치 발행·1만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마무리되면 부시는 중요한 화두를 하나 잃게 될 것이다. 9·11 이후 아랍은 미국 대외 정책의 최대 관심사였고 '이라크'는 그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인의 화두는 계속 '미국'이었다. 미국은 과연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체제에 순응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지난해 출간된 이 두 권의 책은 이른바 '제국'의 지위에 올라 선 미국을 보는 미국 보수 학자와 프랑스 역사학자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수석연구원인 로버트 케이건은 원제가 '낙원과 권력에 관하여'(Of Paradise and Power)라는 이 책으로 지난해 꽤 화제가 됐다. 1980년대 후반 4년 여 국무부 관리를 지냈던 케이건은 부시와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이 이끌고 있는 미 정부 내 신보수주의 흐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학자군의 일원이다. 케이건은 오늘날 중요한 전략적, 국제적 문제에서 '미국은 화성 사람이고 유럽은 금성 사람'처럼 인식이 다르며 그 간극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본다. 유럽이 칸트 식의 '영구 평화론'을 추구하고, 미국이 홉스 류의 '힘을 통한 평화의 실현'을 앞세운다는 이론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망치만 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유럽은 망치가 없어 못도 보지 못하는 꼴이다.
부시 정부를 대변하는 학자답게 결론도 명쾌하다. 미국의 대의는 곧 모든 인류의 대의이고 특히 약세의 동맹국들이 망설일 때 전쟁과 외교 양면을 좌지우지할 압도적 파워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국제 보안관 미국의 역할이자 의지'라는 것이다. 결국 당면한 문제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새로운 현실에 모두 적응하는 것뿐이다.
반대로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 자료국장인 역사학자 엠마뉘엘 토드는 '미국은 보호자가 아니라 약탈자'이며 지금의 반쯤 제국적인 상황에서 완전한 제국으로 결코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 및 인구 변화 과정이 완수 단계에 이른 오늘날 세계는 안정을 지향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열병을 거치고 있는 제3세계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진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어떤 세계적 위협이 있더라도 자유의 수호를 위해서 미국의 특별한 활동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전 지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유일한 위협은 오직 미국 자체이다."(253쪽)
인구학이나 문화, 산업, 금융, 군사 부문을 두루 검토해서 토드는 미국이 '악의 축'을 운운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이라크를 공격하는 모든 일들이 유럽이나 러시아 일본 중국과 같은 강대국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며 갈수록 쇠퇴하는 자신의 처지를 감추려는 핑계 거리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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