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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김시습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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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김시습 평전

입력
2003.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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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지음 돌베개 발행·2만8,000원

'금오신화'의 작자가 김시습(金時習·1435∼1493)임은 내남이 아는 바다. 좀 더 아는 사람은 절의를 지킨 생육신으로, 광기 어린 천재시인으로 불교와 유교 사이를 넘나든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가 일화와 전설이 무성한 한문학의 대표적 작가라는 점 또한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에 비해 김시습의 삶의 궤적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정신적 고뇌까지 들여다본 진정한 '평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처럼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을 흡수한 경우 그 내면의 결을 따라가기란 실로 곤혹스럽다. 관련자료의 정확한 해석과 방대한 연구성과를 집대성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바탕 위에 연관 분야까지 되돌아보며 한 인간의 일대기를 기술한다는 것은 더욱 고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평전은 한 인간의 인생 역정과 사상을 재구성한 영혼의 일대기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시습 평전'은 거기에 값할 만하다. 저자 심경호(48)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각고의 노력으로 김시습이 남긴 시문집과 저술, 그가 교유한 인물들의 문집까지 총체적 시각으로 전관(全觀)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꼼꼼한 조사, 다양한 자료와 연구성과의 섭렵, 심오한 통찰에 바탕을 둔 이 전기를 통해 마침내 한문학 작가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신비하며 논란 많은 인물인 김시습의 영혼과 신비를 한 꺼풀 벗겼다.

이 책은 김시습의 일생을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추적해 가며, 기존 성과의 의문점에 질문하고 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다. 또한 다양한 문헌을 동원하여 김시습을 둘러싼 의문점을 하나하나 해소하고, 한 쪽으로는 기존 학설의 오류와 일반의 오해를 바로 잡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의 음색, 산문과 소설의 행간에서 김시습의 인간적 진면목과 문학적 감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김시습의 굴곡 많은 삶과 인간적 갈등 양상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김시습이 살았던 시기는 세조의 왕위 찬탈과 같은 파란의 역사적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김시습은 이러한 혐오스러운 역사적 공간의 모순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과감하게 벗어던질 수 없어 평생을 방외인(方外人)으로 살았다. 방외인은 모순된 질서와 정치권력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그 밖으로 탈주하지만, 현실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인물을 이른다.

이 역사적 공간에서 김시습은 스스로의 이념을 버리지 않고 지키며 살려고 했기에 내면에 크나큰 상흔을 지닌 채, 평생 방랑과 은둔을 반복하였다. 마침내 그는 길 위의 삶에서 일탈의 자유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길 위의 삶을 '탕유(宕遊)'로 표현하였다. '탕유'란 자유분방한 노닖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일체의 속박을 일탈한 자유의 행보였던 것이다. 김시습은 "마음이 세상사와 상반되니 시 짓기 말고 즐길 일 없어라"고 부르짖으며, 자아와 현실 사이 갈등의 분출구로 한시를 선택하였다. 거기에 그의 풍자와 격정적인 비판의식을 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고뇌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국토와 역사 그리고 민중의 애환을 애정 어린 눈으로 보았다. 때로는 고뇌에 찬 듯 신음하고 때로는 천진난만하게 노래하였다. 김시습은 결함 투성이의 현실세계를 우울하게 응시하면서도 슬픔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는 내면적 강인함을 보여주거니와, 이 책은 이 원천을 '쾌활함'으로 명쾌하게 해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시습은 이 쾌활함에 기대어 구세적 열정과 진지한 탐구정신으로 산문을 창작하였고, '금오신화'에서는 초월적인 신이한 존재를 동원하여 정신사와 인생과 인간 존재의 근본문제를 신화적으로 연출하였다.

이 책은 그의 삶과 사상, 그리고 문학의 궤적을 적시하면서 생육신과 절의라는 좁은 틀로 그를 결코 가둘 수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시습은 사유와 행동, 저술을 모두 중시한 인물이었으며, 절의의 화신, 광인이라기보다 시인이면서 사상가였고 고독한 영혼을 소유한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말미에 이 책은 김시습이 고뇌의 삶을 마감하고 떠난 이후, 100여 년 동안 그의 인간적 풍모에 마음이 끌리고 그의 작품을 사랑한 인사들에 의해 유고가 수습되는 에필로그와 연보까지 친절하게 제시해 두었다.

'김시습 평전'은 세부 고증에 노력을 기울인 미덕도 없지 않으나, 관련사항에 대한 설명과 인용을 자주 동원하는 등 일반 독자의 인내를 요하는 아쉬움 또한 없지 않다. 이는 학술 논문과 대중적 글쓰기를 넘나들면서 생긴 문제로 보인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김시습 평전'은 일화와 신화의 세계로부터 김시습을 끄집어 내어 시대의 비판자, 귀속을 거부한 고독한 영혼을 소유한 자유인으로 새로이 부활시켰다. 김시습의 인간적 풍모와 신화를 두루 이해하고 싶은 사람, 천재시인으로의 역량과 '금오신화'의 진정한 이해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삶의 태도와 현실에서 겪는 삶의 가치와 대화하려는 독자는 이 책에서 명쾌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진재교·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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