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레비나스 지음·서동욱 옮김 민음사 발행·1만5,000원유대계 리투아니아인으로 존재론에서 출발한 독특한 윤리학설로 현대 철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95)의 첫 저작이다. 강연이나 방송 대담 등 좀 쉬운 글로 레비나스의 사상 체계를 알 수 있는 책('시간과 타자' '윤리와 무한')은 국내에 이미 나와 있지만 직접 쓴 단행본 철학서가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2차 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한 레비나스가 독일 스탈라그 수용소에 포로로 잡혀 있으면서 집필했다(리투아니아에 있는 그의 가족은 모두 학살됐다)는 저술 배경도 이채롭지만,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체계적인 철학서 가운데 초기 사상을 가장 충실하게 살필 수 있어 값지다.
알려진 대로 레비나스는 윤리학을 '제1 철학'이라고 주장한 철학자이다. '만일 철학이 존재에 관한 물음 이상이라면, 그것은 철학이 이 물음을 넘어서게 해주기 때문이지 이 물음에 대답하게끔 해주기 때문은 아니다. 존재에 관한 물음 그 이상일 수 있는 것,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선이다'(30쪽)
책에서 레비나스의 관심은 '나'라는 동일자로 결코 흡수되지 않는 타자가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타자에 대해 내가 가지는 윤리적인 책임만이 나의 초월을 가능케 하는 근본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는 정신이란, 주체란, 존재란 초월적인 것이 아니며 '주체에서 대상으로, 자아에서 세계로, 순간에서 타자로 가는' 과정에서 존재자로 자리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자리 잡기를 통해 타자를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며, 나아가 죽음이 아닌 이타적인 행위(출산과도 같은)를 통해 초월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나치의 전체주의가 서양철학의 잘못된 존재론에서 출발했다는 레비나스의 주장이 어떤 철학 논리에 근거하는지 살피도록 돕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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