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유일한 잔혹극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를 기성 극단으로는 처음으로 국립극단이 18∼2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로마 말기 궁정을 배경으로 엽기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펼쳐지는 이 연극은 셰익스피어 초기 작품(1589∼1593경)으로 당시 많은 인기를 모았지만 잔혹한 장면이 많아 후대에는 거의 묻혀진 작품이다.14번의 강간과 살인, 생매장, 사람고기를 먹고 손발과 혀를 자르는 장면 때문에 이번 공연에도 연극으로는 드물게 관람등급이 16세 이상이다. 로마 말기에 로마를 자주 침략한 게르만족의 일파인 동고트족을 물리친 로마 장군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는 동고트족 여왕 타모라의 애원을 무시하고 여왕의 큰 아들을 살해한다. 원로원은 앤드러니커스를 황제로 추대하지만 그의 거절로 사악한 왕자 새터니어스가 황제 자리에 오르고 황후가 된 타모라는 복수의 칼을 간다.
복수에 참여하는 주요 등장인물은 황후의 정부인 무어인(북아프리카인) 아론과 황후의 두 망나니 아들 카이런과 디미트리어스이다. 앤드러니커스의 딸 라비니어는 겁탈 당하고 손발과 혀가 잘리고 황제의 동생은 살해당하고 그 죄를 앤드러니커스의 아들들이 뒤집어쓰고 사형당한다. 앤드러니커스는 복수를 맹세하고 피를 부르는 복수와 음모에 등장 인물은 차례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셰익스피어를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든 이 작품은 후대의 유명한 4대 비극의 면모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명예와 승리를 추종하는 앤드러니커스가 황후의 두 아들을 죽이고 파티를 열어 인육을 황제와 황후에게 먹이는 장면에서는 리어왕의 광기, 멕베드의 음습함, 오셀로의 복수의 원형이 느껴진다. 앤드러니커스가 황후를 죽이고 황제의 칼에 쓰러지고, 황제는 앤드러니커스의 큰 아들 루시어스에게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햄릿의 장면이 잠시 스치기도 한다.
후대의 작품에 비해서 감정의 절제나 문학적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20세기 들어 오히려 생생한 연극적 요소가 주목돼 1955년 피터 브룩의 연출로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 로렌스 올리비에(앤드러니커스), 비비안 리(라비니어), 앤소니 퀘일(아론) 등 호화 배역으로 무대에 올린 이후 최근 앤소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 '타이터스'까지 등장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중견배우 이문수씨가 앤드러니커스 역을 맡고 문영수, 권복순, 최원석씨 등이 출연한다.
번역과 연출을 맡은 국립극단의 예술감독 김철리씨는 5막 15장의 대본을 충실히 번역했지만 양복에 가죽점퍼를 입고 앤드러니커스의 아들 루시어스는 칼 대신 총을 사용하는 등 연출에서는 파격을 추구했다. 그 동안 코믹 잔혹극이라는 장르의 가벼운 영화에 식상한 관객은 셰익스피어 정통 잔혹극의 색다른 미학에 빠져도 좋을 듯하다. (02)2274―3507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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