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중국 영화배우 장궈룽(張國榮)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만우절 장난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살을 믿기 힘들기도 했지만 '장궈룽'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다가온 것도 한 이유였다. 나도 '장궈룽'의 열렬한 팬이다. 그렇지만 20대 중반인 내게 그는 개정 표기법에 따른 '장궈룽'이 아니라 '장국영'으로 각인돼 있다. 나 또래의 '장국영 세대'들이 받은 충격과는 달리 10대들에게 46세의 중년배우 '장궈룽'의 죽음은 그리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장국영'과 '장궈룽'처럼 동일 대상을 가리키는 표기의 차이조차 이처럼 세대간의 벽을 확인케 한다.1990년대 이후 각종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주기는 최신 컴퓨터가 구닥다리가 되는 시간만큼이나 짧아지고 있다. 한때 신세대를 지칭하던 'X세대'나 '오렌지족'이라는 표현도 이제는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낡은 표현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웬만한 광고조차 부모 세대에게는 생경하다.
갈수록 벌어지는 세대간의 언어 차이는 나마저 의사소통의 벽을 느끼게 한다. 세대차로 잘 모르는 용어는 그래도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어 나은 편이다. 같은 단어를 아예 서로 다른 의미로 쓸 때는 의식차를 실감한다. 말마다 세대의 가치관이 배어있으니 세대차를 느낄 수밖에…. 아직도 적잖은 기성세대가 미국하면 '한국전쟁 이후 우리 경제와 안보에 도움을 주고 있는 동맹국'을 떠올리지만 요즘 세대는 '효순이와 미선이를 죽게 만들고도 미안해 할 줄 모르니 좋아하는 맥도날드쯤은 한 동안 안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지난 해 월드컵 당시 전국의 거리를 물들인 응원 행렬을 본 기성 세대들은 붉은 악마의 대표색인 빨간색을 두고 '레드 콤플렉스의 극복'이라는 등 거창하게 의미를 달았다. 하지만 요즘 세대에게 빨간색은 좌파 이데올로기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접해온 코카 콜라와 산타 클로스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 기성세대의 의미부여는 호들갑으로만 보일 뿐이다.
세대간의 언어 차이는 경험 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일방적으로 한 쪽의 언어만을 강요해선 대화가 되지 않는다. 골만 깊어질 뿐이다. 식탁에서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말이 안 통한다고 느낄 때 "이제 다 컸다는 거지" "아빠는 고리타분해"라며 탓하기 보다는 하루에 하나라도 괜찮으니 서로의 언어를 익히려는 노력은 어떨지.
김 재 은 이화여대 시사웹진 듀(DEW)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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