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락 이틀째인 10일 바그다드 시내는 무질서와 혼돈이 극에 달했다. 수만명의 시민이 도심 곳곳을 약탈했고, 외곽에서는 총성과 포성이 이어졌다.이날 동이 트면서 연령 불문하고 수만명의 시민은 손수레와 차량을 동원,사담 후세인 체제에서 영화를 누린 인사들의 저택을 습격했다. 티그리스강 동안 자드리아 지역에 위치한 타레크 아지즈 부총리와 후세인의 딸 할라, 군 장성들의 가옥이 주 타깃이었다. 특히 후세인 장남 우다이 저택 골목은 시민들이 약탈한 물건을 실으려 세워둔 차량이 줄을 이었다.
시민들은 독일 대사관, 프랑스 문화센터에도 들어가 닥치는 대로 컴퓨터, 가구, 에어컨 등을 쓸어갔다. 시내 곳곳에 포진한 미 해병대는 시민들의 약탈행위를 목격했지만 제지하거나 질서유지를 위해 별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한 시민은 "우리는 지금 미군이 아니라 이라크 사람을 두려워한다"며 구역질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침은 시내 북동부 지역 순찰에 나선 미 해병대 장갑차와 탱크들의 캐터 필러(궤도) 소리, 지축을 흔드는 포성소리와 함께 밝았다. 미 해병대와 이라크 군은 7시간 동안 도심 북부 대통령궁을 둘러싸고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오후 들어 미 해병대가 폐허가 된 대통령궁에 진입, 민병대를 색출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후세인에 충성하는 민병대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도심 곳곳의 빌딩은 민병대가 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불로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AFP 통신은 시리아 자원병 모하메드 알 다루즈(24)가 "바그다드는 결코 정복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소리치며 소총을 치켜들었다고 전했다.
거리와 주택가에서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불안한 표정으로 나라의 미래에 대해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 시민은 "우리는 미국을 좋아한다"고 소리쳤고, 다른 시민은 "후세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미군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엄존했다. 미군 탱크가 지나가자 손을 흔들어보인 한 시민은 "나는 후세인을 좋아한다. 그는 용맹스러운 영웅이다"라고 소리쳤다.
그의 말은 격렬한 길거리 논쟁을 낳았다. 마지드 모하메드(47)는 "사담은 개다. 개 자식이다"고 욕을 쏟아냈다. 그러나 딸 사라(12)가 "난 슬퍼요. 미국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갔어요"라며 울먹거리자 모하메드도 눈시울을 붉혔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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