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투자냐, 인수합병(M&A)을 노린 포석이냐." 증시 침체 속에 일부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중소형 기업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지분 매집을 하고 있어 그 배경에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올들어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국민은행 등 대표 기업들의 주식을 대거 내다판 것과는 달리, SK(주)에 대한 크레스트의 주식 매입처럼 외국계 펀드들은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주식을 사들여 경영진과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이들의 주식 매입이 수익 극대화를 위한 단순 투자인지, 아니면 M&A나 경영간섭을 노린 전략적 접근인지를 파악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국계 투자펀드인 오펜하이머펀드는 10일 LG홈쇼핑 지분 11.39%를 취득했다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LG홈쇼핑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30%인 점을 감안하면 적대적 M&A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회사측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고급 스포츠 의류 생산·수출 업체인 영원무역은 올 2월 이후 외국인들의 집중적인 주식 매입으로 M& A설에 휩싸여 있다. 2월까지만 해도 7%에 불과하던 외국인 지분이 2개월 사이 25%대로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회사 주식을 산 외국인들이 홍콩지역의 10여개 펀드를 통해 금감원 신고 규정인 5%미만으로 주식을 사들인데다 최대주주의 지분 7.74%를 훌쩍 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순수 투자도 일부 있고, 일부는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도 있어서 대주주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계 투자펀드인 바우포스트그룹은 최근 환인제약(7.56%), 현대약품(8.04%), 삼일제약(9.14%), 삼아약품(5.02%) 등 국내 제약업체 지분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국내 제약업종의 주가가 수익성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데다 의약분업 이후 실적이 좋아지고 있고 국내 인구 노령화로 약품수요가 늘어나 장기 전망이 좋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지만 이들이 사들인 제약주들은 한결같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낮다.
이밖에 영국계 펀드인 아리사이그코리아펀드가 최근 펀드간 합병을 통해 패션 업체인 한섬 지분을 6.93%로 늘려 1대주주인 정재봉 사장(21.79%)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으며, 영창악기(8.46%), 오뚜기(12.40%), 에스에프에이(8.34%)의 주요주주가 됐다.
전문가들은 오랜 증시 침체로 시가총액이 순수 기업가치는 물론 현금성 자산가치(청산가치)보다 낮은 기업이 속출하면서 우량 기업 지분을 싸게 매입할 수 있게 되자 자금력이 풍부한 외국계 펀드들이 중소 우량기업을 대상으로 입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시가총액을 순자산(자기자본총액)으로 나눠 1주당 순자산 장부가치를 나타내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 미만이면서 수익성 좋은 기업을 알아봐 달라는 외국인들이 많다"며 "이들은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대주주 지분이 취약하며, 탄탄한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 외국계 펀드의 지분 매입이 적대적 M&A나 경영권 인수의도라기 보다는 중·장기적인 주가상승을 노린 선취매이거나 경영 참여를 통한 고배당 요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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