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이어 정부와 경제인식을 같이 해온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대 초반으로 대폭 낮추면서 적극적인 경기부양론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정부도 악화한 경기상황을 감안해 성장률 전망치를 4.5%대로 수정할 움직임이다. 더욱이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경기가 안 좋다는데 공감하고 있으며, 시기를 판단하고 있다"고 밝혀 경기부양 착수가 초읽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하지만 금리인하와 재정적자 편성 등을 놓고 부처간 이견이 여전해 아직 정부의 정책기조 수정을 속단하긴 이르다.
경제전망 잇따라 하향 조정
KDI는 10일 발표한 '1·4분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3%에서 4.2%로 낮췄다고 밝혔다. 수출과 건설투자의 호조에도 불구, 소비 증가세의 둔화와 설비투자 부진, 이라크전쟁 지연, 북한 문제 악화 등을 반영한 것이다.
KDI는 또 민간소비 증가율을 당초 4.4%에서 절반 이하인 2.1%로 낮추고, 소비자물가 상승전망은 3.2%에서 3.8%로 높였다. 한은도 이날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7%에서 4.1%로 낮추고 경상수지는 10억달러 적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9%로 각각 수정했다. 또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이달 콜금리 목표를 현 수준(4.25%)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성장률 전망치 또 하향 가능성
KDI는 현 경제상황에 대해 "급속한 내수위축과 이라크전쟁, 금융시장 불안 등이 겹쳐 경기가 빠르게 하강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놓고 있다. 특히 고유가 등으로 교역조건이 악화해 상반기 실질국민소득(GNI) 증가율이 GDP 증가율보다 3%포인트 이상 낮은 1% 내외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등 체감경기는 더욱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한은도 이 같은 경제인식에는 동의한다.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는 "당초 1, 2월로 예상한 이라크전쟁이 늦어지면서 상황이 예상보다 나빠진 만큼, 6월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세울 때 성장률 전망치를 4.5% 정도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들 기관은 이라크전쟁이 조기 종결되면 유가가 안정되고 민간 구매력이 살아나면서 하반기 경제는 지금보다 호전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조동철 KDI 거시경제팀장은 "이라크전쟁이 끝나도 북핵이라는 불확실성이 여전하며, '사스(급성호흡기증후군)'가 국내 및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감안되지 않았다"고 밝혀 성장률 전망치가 다시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리인하 등 경기부양 논쟁 확산
KDI는 이에 따라 2조∼3조원 규모(GDP의 0.4%)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등 현 재정정책을 중립 또는 소폭의 확장기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또 주식시장 침체와 채권시장 동요 등을 감안할 때 금리인하의 여건이 조성돼 있는 만큼 단기금리를 내려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하강에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 (부양책을) 쓰기 보다는 당분간 두고 보자는 의견이 많다"면서도 "(경기부양 착수) 시기를 판단하고 있다"고 말해 "경제가 어렵다고 단기적 부양책을 쓰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섣부른 재정정책은 인플레를 유발하고 부동산투기 재발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