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로 방송위원 임기가 끝난 지 두 달째인데도 2기 방송위원회 구성이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휘말려 오리무중이다. 한나라당이 방송법 개정 추진에 나서고, 문화관광부가 방송정책과 관련한 영향력 확대에 나서면서 방송위의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다.한나라당은 최근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방송위원을 3인에서 1인, 전체 위원을 9인에서 7인으로 줄이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또 국회 추천 6인을 모두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추천하되 한 교섭단체가 3인을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경우 여야 7대2인 위원 비율이 4대3으로 조정돼 방송위의 방송정책 총괄 및 방송계 요직 임명·제청 등 권한 행사에서 여권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측은 "KBS 사장의 '낙하산 인사' 파동에서 드러났듯 현재 구조로는 방송위가 여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 방송법 개정에 나섰다"면서 23일 문광위에서 통과시켜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민주당측은 "한나라당이 방송위를 장악하려는 음모"라고 즉각 반발하고 나섰지만 한나라당은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표 대결을 해서라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위원 배분을 둘러싼 다툼이 방송법 개정 논란으로 번지면서 방송위의 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디지털TV 전송 방식,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사업자 선정 등 시급한 현안 처리는 고사하고 5월로 예정된 KBS 이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EBS 사장과 이사 등의 인선이 줄줄이 차질을 빚게 돼 '방송 대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방송정책권 환수 논란도 다시 불붙었다. 문화부는 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방송정책과 영상콘텐츠 진흥정책의 분리 방안을 밝혔다. 인허가 규제 심의 등은 방송위가 맡되, 산업 진흥 업무는 문화부가 주도해 체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 문화부는 "그동안 방송의 '언론' 기능만 부각돼 문화산업 차원의 지원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방송위는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과 함께 방송위로 이관된 방송정책권을 되가져 가려는 의도라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방송위 노조는 8,9일 한나라당과 문화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고 "청와대와 민주당이 방송위원 선임을 미뤄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며 "하루 속히 개혁성 전문성 독립성을 갖춘 인사로 2기 방송위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행 방송법에 문제가 많고 방송위와 문화부의 업무 분담도 재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시점이 적절치 않다"며 "일단 2기 방송위를 구성한 뒤 장기적 안목에서 관련법과 제도 정비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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