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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송판도]<4> 소비자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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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송판도]<4> 소비자소송

입력
2003.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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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을 권리, 담배를 피워도 암에 걸리지 않을 권리, 차를 타도 급발진 사고를 당하지 않을 권리, 콜라를 마셔도 이가 상하지 않을 권리…. 소비자 소송은 지난 해 7월 제조물책임법(PL)이 공포되면서 국내에서도 '공익 소송'의 대표적인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법은 '제품 결함 때문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 제조업자에게 무과실 책임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면서 '제조상 결함이 없었다'는 입증책임을 제조자 측에 넘기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제조물책임법의 등장에 대해 법조계는 법리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이 법 제정 전에도 판례를 통해 수 많은 법리를 개발해 왔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소송에서 큰 진전을 이룬 판례가 1992년 '변압 변류기 폭발 사건' 판결(92다18139)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에서 제품 '결함'의 기준을 "현대의 기술수준과 경제성에 비추어 기대 가능한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로 정의했다. 특히 "변압기가 국가검정기관의 품질검사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변압기에 결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명시했다.

또 제조사가 1년내에 발생한 하자에 대해서는 무상수리 해주겠다고 '성능 보장 기간'을 정해 놓았다 해도 그 기간 이후 발생한 결함에 대해서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국내 소비자소송 판례의 시금석으로 꼽히는 판결은 2000년 'TV 폭발사건'(98다15934)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소비자측에서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 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고, 그 사고가 어떤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업자 측에서 그 사고가 제품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못박았다.

'과실 없음'의 입증 책임을 제조업자에게 넘긴 이 판례는 제조물책임법의 근본 취지에 가장 다가선 판례다.

TV폭발 사건 판례 이후 제기된 소비자소송은 현재 대부분 1심이나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담배소송, 급발진 차량 피해 소송, 코카콜라 소송, 햄버거 알러지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소비자소송은 개인적선인 '억울함' 보다는 대규모 원고단이 구성된 '공익 소송'의 개념이 크다. 이 점은 소비자소송의 장점이자 극복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법원은 최근 햄버거를 먹은 후 알러지 피해를 본 개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1심에서 50만원, 항소심에서 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식품과 관련한 소비자소송의 첫 사례였다. 이 사건을 맡았던 홍승기 변호사는 "개별 소비자 사건은 액수가 워낙 미미해 소송을 제기하려는 소비자도 없고 맡으려는 변호사도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 개념이 도입돼, '무모한 방식의 악의적인 결함'에 대해서는 '형사 징벌' 수준의 엄청난 배상액을 선고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불가능하다.

주목되는 것은 지금껏 판례가 거의 전무한 '표시상 결함'에 대한 소비자소송이다. 대표적인 것이 담배소송 처럼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국가나 업체가 알고도 '표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손배 소송이다. 결함 입증이 비교적 쉬운 '제조상 결함' 소송과 달리, '표시상 결함' 소송은 피고측이 제조사가 제품의 해악을 알고 있었다는 내부 보고서 등을 입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소비자소송을 진행 중인 변호사들이 원고가 아닌 모든 사용자에게 소송의 혜택을 확대할 수 있는 '집단 소송제' 도입과 함께 업체의 '정보공개 의무'에 대한 법적 강제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전문변호사들

변호사들에게 소비자소송은 '가시밭길'이다. 피해와 결함 사이의 치밀한 인과관계 입증, 거대 기업과의 정보싸움, 방대한 자료수집이 뒤따르는 소비자소송은 돈벌이라기 보다 자기희생에 가깝기 때문이다.

1만7,000여 명의 원고, 소송가액만 5조1,000억원 대에 이르는 고엽제 소송을 맡아 1심에서 패하고 항소심을 진행 중인 백영엽 변호사는 트럭 1대분에 달하는 자료를 모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 다우코닝사를 상대로 미국 법정에서 진행된 국제소송에 참여, 국내 실리콘 성형 피해자들에게 배상 기회를 열어준 김연호 변호사, 대우자동차를 상대로 한 급발진 피해자들의 소송을 맡아 1심에서 승소하고 2심에서 패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하종선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담배 소송은 최재천 변호사와 배금자 변호사가 앞장서고 있다. 30년 동안 담배를 피워온 흡연자가 국가와 KT& G(옛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을 진행 중인 최 변호사는 국가가 경고문구를 삽입하기 시작한 1976년 전에도 담배의 해악성을 알고 있었다는 70년 국감자료를 확보했다.

소비자소송은 사건 규모와 난이도에 차이가 커서 수임료를 정하기가 힘들다. 급발진 소송의 경우 500만원 미만 정도의 착수금에 성공 사례금은 10% 가량이다. 그러나 시민·사회 단체들과 연계, 대규모 원고인단이 꾸려진 경우는 착수금도 없는 거의 '공짜 소송' 개념이 강하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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