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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마흔 즈음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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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마흔 즈음의 자화상

입력
2003.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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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라." 친구는 차분했다. 티끌 만큼의 주저와 망설임도 남기지 않으려 수개월동안 고민했던 친구였다. 친구는 캐나다 이민을 결정했다.그날 저녁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격려 반 부러움 반, 농반 진반의 덕담들이 술잔과 함께 오갔다. 취기가 오르고 이민가는 친구의 '변(辯)'이 이어지자 술자리는 40대들의 '세상 한탄, 신세 한탄 장'으로 변했다.

마음에 쌓여있던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하나 둘 술자리에 쏟아져 나왔다. 그 넋두리는 40대들이 일상과 부대끼며 느끼는, 그래서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현실 그 자체였다.

친구는 "불확실성이라는 미로에 갇혀있다 빠져나온 기분"이라고 했다. 훌쩍 40대로 접어든 뒤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곤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15년간 대기업에 근무하며 모은 재산이라곤 강북의 27평형 아파트 한 채와 적금 얼마가 전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활이 그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월급으로 사교육비 대고, 대출금 이자와 자동차 할부금 갚고, 시골 부모님 용돈에 형제 친척 친구 경조사 챙기고 나면 그만이었다.

주식투자도 했지만 여느 '개미'처럼 손해만 보고 말았다. 재산을 불리려 해도 마땅한 방법도 없었다. 자식들이 커갈수록 쓰임새는 늘어날게 뻔한데, IMF 때보다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 '사오정'(45세 정년)이라는 유행어처럼 직장내 지위는 불안해졌다. 그렇다고 정부가 노후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결국 친구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이민을 택했다.

비단 그 친구뿐일까.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통해 40대는 정치·사회 변혁의 주체로 떠오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 비서관 가운데 70% 가량을 40대가 차지했다. 40대 장관에 40대 고위관료도 많아졌다. 민간 기업의 40대 최고경영자(CEO), 임원은 이제 흔한 현상이 됐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을 한 꺼풀 벗겨내면 40대의 우울한 모습이 나타난다. 변화를 원하지만 가장으로서, 조직의 중간 간부로서 급속히 현실에 편입돼 가고 있다. 40대 임원이 많아졌지만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임원이 되든 안되든 조기 퇴진을 걱정해야 하고,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조직은 나가주길 원한다.

하지만 40대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통계청이 최근 3만개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49세 가구주 가운데 29.8%가 자녀양육비, 사교육비 증가로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10명중 3명은 10년, 20년 뒤의 삶에 거의 무대책인 상태로, 현재의 삶을 꾸려 가는데 급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라도 나서야 겠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마저 최근 "국민연금은 한국 정부의 예상보다 15년 이른 2020년부터 적자로 반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예상대로라면 40대가 20년 뒤 60대가 되도 국민연금은 받기 어렵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119 구급차에 실려가는 환자 가운데 40대가 60대 다음으로 많고, 40대 환자 대부분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 등 때문이라는 사실은 무얼 의미할까. 40대가 여전히 '나' 보다 조직과 사회를 우선시하며 살면서 가장 혹사당하는 세대라는 의미는 아닐까. 마흔 즈음에 이민을 떠나는 친구에게서 나는 40대의 우울한 자화상을 본다.

황 상 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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