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1월 3일 '사건'이니 벌써 18년 전 얘기다. 서른 둘 적지 않은 나이에 무릎까지 다친 나는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지만 86멕시코월드컵 일본과의 아시아 최종예선 2차전 홈 경기를 앞두고 마음을 비장하게 다잡았다. 벤치에서 득점 없이 비긴 전반전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나는 후반 교체 투입됐고 16분 '돌려차기 왼발 슛'으로 결승골을 뽑아냈다. 32년만의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쥔 뒤 인터뷰에서 "이제야 나이 값을 한 것 같다"고 말한 기억이 새롭다. 그야말로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14년 뒤인 99년 9월 7일 올림픽대표팀 감독이던 나는 도쿄에서 일본한테 0―4로 참패했다. 잦은 원정 경기 탓에 선수들의 몸이 엉망인데다 일부 주전급을 소속팀으로 돌려보내고 치렀기 때문에 할 말은 있었지만 '국민적 분노'앞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엔 '역적'이 된 셈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일본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나 분위기는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일본 대중 문화를 즐기는 청소년이 적지 않듯 일본을 '침략자'로 대하는 선수들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한일전은 한일전이다. 진다면 아직도 국민적 분노를 떠안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젠 한일전을 그저 '스포츠'로 즐길 때가 됐다. 진정한 라이벌로 여기고 서로의 기량을 다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한일월드컵을 공동 주최하면서 각각 4강과 16강에 오른 만큼 세계 수준의 축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16일 한일전은 양국 모두 '유럽파'가 제외돼 '진검승부'가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물론 베스트11과는 차이가 있지만 A매치임에 틀림없다. 자존심이 걸린 물러설 수 없는 명승부를 기대하는 건 당연하다. 코엘류 한국 감독과 지코 일본 감독의 지략 대결은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다.
/전 축구대표팀 감독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