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이라크 바그다드의 심장부 파르두스 광장. 바그다드 군중과 미군 병사들은 거대한 사담 후세인 대통령 동상을 쓰러뜨렸다. 일부 시민들은 밧줄과 쇠사슬에 끌려 곤두박질한 동상을 짓밟으며 환호했다.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돌팔매 없는 다윗과 골리앗의 싱거운 싸움에서 고도(古都) 바그다드는 맥없이 함락됐다.미국 방송들은 하루종일 이 장면을 재방송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이 후세인을 끌어내렸다"며 감격해 했다. 미국인들은 "승리선언만 남겨두고 있다"고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미국이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 막대한 인명살상과 재산 피해를 초래한 이번 전쟁에 대해 미국이 설명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상대로 전쟁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미국이 내세운 전쟁의 근거는 지난해 11월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안 1441조이다. 골자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폐기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는 것. 그런데 미국은 '심각한 결과'에 직면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함을 아직까지 입증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전쟁의 명분에 관한 것이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이라크 자유'라고 명명했다. 후세인의 철권통치에서 해방된 이라크 군중이 환호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이라크인들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라크 자유'대신 '이라크석유'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미국이 전후처리 과정에서 자국의 배만 채운다면 정말로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김철훈 국제부 차장대우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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