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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28> 양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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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28> 양길승

입력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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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약속이 어그러진지 3번 만에 양길승(梁吉承·47)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어렵사리 만났다. 대통령의 업무 일정 건강을 가까이서 챙기는 최측근이자 대선승리의 일등공신이지만 의외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왜 이리 얼굴 뵙기가 힘드냐"고 물으니 "청와대 바깥 출입을 안 해서…"라고 대답했다. "괜시리 밖에서 사람 만나다간 오해 받잖아요." 지난 2월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관사에서 숙식하며 본관 사무실만 오간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전임자 김한정씨로부터 "사람 조심하라", "절대 명함 주지 말라"고 조언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6개월∼1년간은 담장 밖으로 나가지 않을 참"이라며 "밥도 그 후에 먹자"고 한다. 광주에 있는 아내와 두 자녀도 어쩌다 주말에 한번 볼 정도니, 사람 참 고지식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0년 12월 서갑원 의전비서관의 소개로 처음 만나 "첫 눈에 반했다"고 한다. 이듬해 3월 노 대통령의 보좌역이자 광주·전남지역 조직책으로 내려가 지역기반 다지기에 열중했다. 노 대통령에겐 황무지나 다름 없는 곳에서 1년 넘게 '노의 전도사' 역할을 했지만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밥값 낼 돈이 없어 식사자리에도 못가고 유권자에게 차를 얻어 마실 정도였다. 하지만 매일 300여명에게 이메일 인사를 하고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보냈다. 광주지역 교수·변호사 등의 '500인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면서 분위기가 반전했다. '노풍'(盧風)의 주역이지만 "열심히 맨투맨 마크 하니 유권자들이 믿어준 것뿐"이라며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 경선 직전 지구당위원장들이 한화갑 전 대표 쪽으로 돌아섰을 때가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대선경선 이후 6개월간 노 대통령의 의전팀장을 맡았다. 그러나 작년 10월 말 지지율이 15%대로 떨어지자 "노풍을 되살리겠다"며 광주로 자원해서 내려가 두달간 또 거리에서 살았다.

그는 나이 마흔이 넘어 정치판에 뛰어든 늦깎이다. 전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해 박사까지 딴 뒤 수년간 시간강사로 출강했지만 교직을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 "'큰 물'에서 놀면 자리가 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96년 모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이 됐다.

그는 아직 교직에 미련이 많은 듯 "기회만 있다면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겸연쩍게 웃었다.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 물으니 "부속실장에겐 사견이 없으므로 대통령의 뜻에 따를 뿐"이라면서도 "내 성격상 정치가 잘 맞을지…"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소망은 소박하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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