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된 지가 어느덧 9년이 됐네요. 말을 더듬거리고 행동이 굼뜬 저를 놀리고 때리던 아이들을 혼내주시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한 살 때 찾아온 뇌성마비는 저의 평생 친구지만 맞서 싸워야 할 상대이기도 하죠. 외롭고 힘들어 참 많이 울었어요. 할머니는 그런 손주를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해주셨죠. 제가 잘못하면 매를 들었고, 아이들에게 맞고 들어오기라도 하면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셨잖아요.9년 전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일할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눈이 벌개진 채로 한걸음에 뛰어갔지만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조차 뵐 수 없었어요. 할머니 그때 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아세요? 할머니는 제게 어머니나 마찬가지였잖아요. 운동회가 열리고 소풍갈 때면 김밥도 손수 싸주셨죠.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그런데 할머니는 제가 은혜를 갚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가버리셨어요.
할머니, 이 사회에서 저 같은 장애인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학원에 다니기도 쉽지 않아요. 재작년에는 다리까지 다쳐 그나마 학원도 못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혼자서 그야말로 죽어라고 공부하고 있어요.
제게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니예요. 저도 이제 만 스물여덟이예요. 놀라셨죠?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이를 악물고 공부해 방송대 3학년까지 마쳤어요. 전보다는 환경도 좀 나아져 지금은 많은 장애인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요.
저도 시험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3년째네요. 9급 공무원은 나이 제한으로 올해가 마지막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장애인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어느 분이 쓴 글을 읽고 결심한 거랍니다. "직접 공무원 생활을 해보니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곳이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최소한 장애인이라고 해서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끼진 않는다. 누구나 자신감을 갖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제게 용기를 준 글이랍니다.
할머니, 저를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격려해 주세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거예요. 할머니께 입은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다음에 기쁜 소식 전해드릴게요.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배승환·경기 김포시 월곶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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