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홈시스(주)의 구자신(具滋信·62) 사장은 항상 스스로를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고 겸손해 한다. 성공의 비결을 물으면 "위기 때마다 한눈 팔지 않고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에 전력을 다한 것 밖에 없다"며 특유의 너털 웃음을 짓는다.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고난과 역경의 한(恨)이 녹아 있음이 느껴진다. 지방의 이름없는 중소 업체가 제품 출시 3년 만에 '코끼리 밥솥'으로 알려진 일본산 조지루시(象印)밥솥과 국내 대기업 제품을 밀어내고 국내 선두자리에 올라서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구 사장은 그래서 쿠쿠 밥솥의 성공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뚝심 경영'의 토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구씨 집성촌인 경남 진주에서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구 사장은 한국의 3대 재벌(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을 배출했다는 지수초등학교를 나왔다. 경남중-부산고를 거쳐 1961년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한 그는 6·3사태가 나던 64년 고대 총학생회장을 맡아 한·일 밀실외교 반대 운동을 선도했다.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고대 상과대학 학생회장이 지금도 구 사장과 절친하게 지내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다. 구 사장은 당시 시위로 학교에서 제적돼 서대문 교도소에서 100여일간 투옥 생활을 하다가 대통령 특사로 출소했다.
대학 졸업 후 쌍용그룹의 전신인 금성방직에 입사한 구 사장은 창업자이자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었던 김성곤 의원의 비서관으로 10년간 일했다. 그러다 74년 금성사(현 LG전자)가 전문화공장 육성 전략의 하나로 소형가전 주문자제작상표(OEM) 제조업체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창업을 결심, 1억원의 자본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만든 성광전자는 금성사에 전기 밥통만 납품하던 중소 OEM 업체였다. 그런대로 회사를 꾸려가던 구 사장은 82년 첫번째 위기를 맞는다. 금성사에 납품했던 전기밥통에서 다량의 불량품이 발견돼, 무려 5,000여개의 리콜 요구를 받은 것이다.
구 사장은 "당시 반품된 5,000대 전기밥통을 공장 마당에 3년 동안 그대로 쌓아 두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더 이상 불량품을 만들지 말자'는 다짐이자 직원들에 대한 시위였지요. 그 사건 이후 품질이 향상돼 금전적 손해는 봤지만 양질의 제품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지금도 쿠쿠는 품질 관리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품질관리부는 사장 직속 관할이다. 쿠쿠홈시스의 불량률이 0.43%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리콜 사건 이후 성광전자는 OEM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했다. 그러나 구 사장에게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당시 국산 전기밥솥의 성능은 얼마나 일본 제품을 잘 베끼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기술력에서 워낙 차이가 나 독자적인 제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요. "
구 사장은 95년부터 압력 기능을 추가한 압력밥솥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LG전자측이 '압력 밥솥이 터지는 사고가 나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고 우려하는 바람에 생산은 무산됐다. 97년말 외환위기가 왔지만 구 사장에게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된 기회였다.
"환란이 발생하자 제품이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이 때다 싶어 LG측에 '판매 부진으로 회사가 도산 위기에 처해 있어 자체 브랜드 시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말했더니 받아 주더군요."
구 사장은 압력 밥솥에 승부를 걸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자체 브랜드인 '쿠쿠'가 히트를 치자 지난해부터 아예 OEM을 중단하고 자체 브랜드 판매에만 전력하고 있다. 사명도 '쿠쿠홈시스(주)'로 바꿔 진공청소기, 가습기, 선풍기, 공기청정기 등 소형 가전으로 분야를 넓혔다. 품질 제일주의 경영 이념에 따라 전 인력의 12%, 총 매출액의 7%(110억원·2002년)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성공비결은 우리 입맛에 맞는 우리만의 밥솥을 만든 데 있습니다. 쿠쿠제품은 성능, 디자인, 편의성, 사후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일본 제품에 앞서 있다고 자신합니다."
업무에서는 엄격한 CEO지만 구사장은 매달 '생일자 간담회'를 열어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 운영은 정(情)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회사는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운영은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정으로 똘똘 뭉치면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구 사장의 다음 목표는 중국 진출이다. 제품 출시 3년 만에 정상에 올랐듯 5년 안에 중국에 기반을 잡을 계획이다. "10여년 전 우리 주부들이 그랬듯이 벌써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쿠쿠를 사가는 것이 유행이 됐습니다. 중국에서의 성공도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양주=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 구자신 사장은 누구
―출생: 1941년 경남 진주 출생
―학력: 부산고-고려대 정외과
―현재 쿠쿠홈시스(주), 쿠쿠전자 대표이사, 양산 상공회의소 회장
―가족: 최영순씨와 2남
―취미: 골프, 등산
▲196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1965년 금성방직 입사
▲1974년 (주)성광통상 창립, 전무이사
▲1978년 성광전자(주) 창립, 대표이사
▲1999년 쿠쿠(주) 대표이사
■나의 여가
이순(耳順)을 넘기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만의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삶에 작은 여유를 주는 소일거리를 발견했다.
주말 등산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아내와 함께 가까운 산에 오르는데 우선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 산에 오르는 동안 회사 일은 물론이고 평소 소홀했던 가족, 친구, 친지들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사색에 잠길 수 있어 좋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혼자 산에 오르면 생각이 정리 된다.
등산이 신체에 활력을 준다면 방과 사무실에서 가꾸는 난(蘭)과 수석은 내부 정신 수양을 도와준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받은 것이 계기가 돼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신비한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집안에 수십 종의 난과 수석이 있는 데다 이런저런 관련 서적도 챙겨봐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동종업체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면서 부족하기 쉬운 정서적 안정을 난과 수석을 가꾸면서 다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원들에게도 항상 '일 때문에 자신의 삶을 건조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삶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구사장
지역경제인의 한 사람으로서 구자신 대표는 늘 든든한 동지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 경제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지역경제는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구 대표와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얘기를 많이 나누곤 한다. 지역경제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생각에도 유사점이 많아 서로 도움도 받고 힘도 얻는다.
최근 쿠쿠홈시스(주)의 중국 칭타오(靑島) 지역 공장 설립과 관련해 중국 시장에 대해 얘기를 길게 나눴던 적이 있다. "중국 진출이 다른 지역 경제인들에게 또 다른 기회와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 생각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는 말에 감동한 기억이 새롭다. 그는 방송에 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부산방송 회장으로 있다 보니 여러 사람으로부터 프로그램에 대한 제안을 자주 받는다.
그는 지역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방송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가끔 한다. 웃으면서 말을 하지만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참 알차 감탄할 때가 많다. 구 대표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사람이다. 기업의 대표는 쉽게 만나기 힘들다는 통념은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구 대표는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인생에서 사람과의 인연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기도 하다. 그는 정말 배울 것도 많고, 함께 나눌 것도 많은 든든한 동지임에 분명하다.
강 병 중 부산상공회의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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