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4월10일 시인 박재삼이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났다. 1997년 몰(沒). 박재삼은 4세에 가족을 따라 고향인 삼천포(지금의 사천시)로 와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삼천포 여중에 사환으로 들어가 일했는데, 그 곳에서 가르치던 시조시인 김상옥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 뒤 학업을 재개해 삼천포 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박재삼의 시세계 밑바탕에 있는 것은 어떤 설움이나 비애의 정서다. 그 설움과 비애는 어린 시절 이래의 가난이나 그의 만년을 괴롭힌 온갖 병마와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박재삼의 설움은 일급의 설움이다. 그것은 그가 일급 시인이었다는 뜻이다. 그 설움은 공교함과 절제를 겸한 그의 시어에 실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펼쳐지고 접혀진다.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로 시작하는 '밤바다에서'나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로 시작하는 '울음이 타는 강' 같은 작품에서 그 설움의 펼침과 접힘은 미려하다 못해 장려하다.
그러나 기자가 더 좋아하는 시는 춘향의 입을 빌려 사랑을 찬미하는 '자연'이다. "뉘라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바람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 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꽃나무에 가탁한 화자의 마음은 웃거나 우는 것이 아니라 웃어지거나 울어진다. 그 자발적 피동성이 사랑이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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