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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추기경, 아귀레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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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추기경, 아귀레의 선교사?

입력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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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는 항상 강한 자의 편을 들어왔지요."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베르너 헤르초크 감독의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1972)에 나오는 한 스페인 선교사의 말이다. 16세기 이래 스페인의 탐욕스러운 모험가들은 엘도라도라는 상상 속의 황금향을 찾아 아마존강 근처를 헤집고 다니며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화하고 드넓은 땅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흔히 콘키스타도레스(정복자들)라고 불렸던 이들 군인 모험가에게는 꼭 선교사가 따라다녔다. '미개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하고, 죽게 된 군인들에게 종부성사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헤르초크 감독의 영화는 아귀레라는 정복자의 광기어린 생애를 그렸는데, 영화 속 선교사의 발언은 아귀레 일행의 잔학 행위를 변호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김수환 추기경이 최근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들은 아귀레를 따라다닌 저 선교사의 발언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정부의 파병 결정은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깊은 뜻에서 나온 것 같다"(그 정부는 누구의 정부일까?), "현재의 반전 무드를 보며 북한이 오판하지 말기를 바란다"(지금 북한이 '오판'해서 미국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북한이 만약에 '오판'하면 현재의 반전 무드를 뒤집어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일까? 1980년 봄 학생 시위대는 구호 끝머리에 사족처럼 '김일성은 오판 말라'를 곁들였다. 군부가 민주주의를 압살하며 내세운 가장 큰 구실이 '북한의 오판 가능성'이었으므로), "나도 나이 많은 사람이라 보수적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새 정부를 염려스럽게 지켜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본래 노선에서 수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책임을 맡게 되면 달라진다"(약속과 달리 보수화하는 것을 보니 안도감이 든다?).

공정함을 위해서, 추기경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비판했다는 것은 지적해두어야 하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자는 그의 발언들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강한 자의 편을 든다'는 영화 속 종군 신부의 발언에서 얼마나 먼지 모르겠다. 추기경은 정부와 시위 시민 사이에서는 정부를 편들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는 미국을 편들고,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 사이에서는 기득권 세력을 편든다.

이 대목에서, 역사 속의 교회가 수행해온 수많은 반동적 역할들을 떠올리는 것은 유혹적이기는 하지만 온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 자신이 지금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미국의 핵심 권력층을 비판하고 있으니, 김추기경의 발언은 교회라는 맥락에서 떼어내 그 자신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옳을 터이다. 그러나 이런 분리가 쉽지만은 않다. 김추기경은 적어도 한국 가톨릭 교회를 상징하는 인물이고, 그 자신 이런 상징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기자 생각에 추기경의 발언은 양식 있는 시민의 발언으로서 부적절한 것이었고, 하물며 한 나라의 대표적 종교 지도자의 발언으로는 더욱 부적절한 것이었다.

물론 추기경이 인터뷰에서 자신을 평가했듯, 한 보수주의자로서의 발언이었다면 이해할 만도 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그가 이회창 후보에게 호감을 표한 것도 보수주의자로서의 처신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추기경 자신이 의식적으로라도 종교 지도자의 아우라를 걷어내고 그저 한 보수주의자의 발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한국 가톨릭 교회의 명예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기자는 추기경과 달리 새 정부가 점점 더 염려스러워진다. 북한에 모멸감을 줄 대북 송금 특검법 공포에서부터 농담처럼 이뤄진 파병 결정과 외국인 고용허가제 유보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이 정부는 점점 지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얻기보다 잃기가 훨씬 쉬운 요물인데도 말이다.

고 종 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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