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월드컵 축구대회 때 '붉은 악마' 응원단이 대형 도깨비 얼굴을 그린 깃발을 휘두르면서 중국 신화에 나오는 치우(蚩尤)의 이름이 새삼스럽게 알려졌다. 붉은 악마 응원단은 치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한단고기'(또는 환단고기·桓檀古記)와 같은 재야 사서를 인용, 치우가 고대 한민족의 강력한 임금이었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살렸다고 했다.환인, 환웅, 단군 시대의 옛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단고기는 주류 학계에서는 위서(僞書)로 치지만 재야 사학계와 일부 젊은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이 만화로 나왔다. '숨쉬는 땅', '지킴이', '땅땅땅', '정복자'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작품을 잇달아 발표해 온 한재규 명지대 만화예술창작과 교수의 작품이다.
'만화 한단고기'(북캠프 발행)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우 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투항, 훗날 선조로부터 김충선이란 이름을 하사 받은 사야가(沙也可·1527∼1642)가 고대사의 비밀을 두드리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고조선 유민의 후예였던 사야가에게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한 역사책은 어떤 것일까. 한 교수는 그 책들이 '조대기' '진역유기' '삼성기' '단군세기''북부여기' '태백일사'등 상고사의 비밀을 담은 책들이며 사야가(1527∼1642)보다 40∼50년 후의 사람으로 추정되는 북애자가 1676년 '규원사화'를 쓸 때 이 책들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만화는 최초의 인류 나반과 아만의 창조 설화와 한민족 최초의 우두머리 환인 천제가 인간사를 다스리는 내용을 담은 환인천제편, 지상세계로 내려온 환웅이 태백산 신시에 도읍을 청하고 배달국을 다스리는 환웅 천황편과 동이족의 본류로 조선을 개국하는 단군 왕검편 등 3권으로 구성됐다.
이 만화에 따르면 치우 천황을 기원전 2706년에 등극한 배달국 제14대 자오지 환웅 천황이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기 400년 전의 인물로 청동 무기를 개발해 영토를 확장하고 천하를 평정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치우 신화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형제가 81명이 있었는데 모두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 도극 태노(모두 무기 이름임)를 만드니 그 위세가 천하에 떨쳤다."
'만화 한단고기'는 어려운 한자어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던 한단고기를 극화로 꾸몄고, 많은 참고문헌과 사료를 그림으로 묘사해 읽는 재미를 주고 있다. 봉황과 용이 동이족의 상징이 된 연유, 세계 최초의 표음문자 가림토, 쿠데타의 원조 색불루 단군 등 재야 사학계가 매달리는 중요 내용을 알기 쉽게 전하고 있다.
한 교수는 1982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승전고를 울려라'를 연재한 이후 만화 인생 대부분을 역사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아득한 시기의 상고사를 만화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그는 "한단고기는 민족사의 살이라고 할 수 있다"며 "다음에는 한민족사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부도지(符都誌)를 만화로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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