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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한국경제 위기인가]<4> 시장기능 상실해가는 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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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한국경제 위기인가]<4> 시장기능 상실해가는 증시

입력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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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바그다드 입성 이래 여의도 증권가는 요즘 모처럼 만에 봄볕이 든 듯한 분위기다.옵션만기의 영향으로 9일 종합주가지수는 다소 꺾였지만, 일주일 가까이 지속된 지수 상승에 따른 희망이 살아나고 있고, 단기 유동성장세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8월 이후 평균 1조원대로 떨어진 일일 거래대금이 요며칠새 3조원을 넘는 거래 활황세를 나타내며 기대감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이 '꽃피는 봄날'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의 증시상황을 '살얼음판 위의 잔치'라고 일축했다. 그는 "거래소든 코스닥이든 증시는 현재 경기 불안감 외에도 시스템 불신과 경제 외적인 불확실성 등으로 만신창이 환자와 같은 상태"라며 "언제라도 급전직하의 추락이 현실화할 수 있는 살얼음판 위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한 꺼풀만 벗겨보면 국내 증시는 처참한 환부를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우선 종합주가지수는 지난해 4월 937.61에서 9일 현재 569.47로 무려 40%가 침몰한 상태다. 1년 사이에 거래소에서만 124조원의 자산이 공중분해된 셈이다.

증시 장기침체와 잇달아 부각되는 악재는 증시 본연의 기업 자금조달 기능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14개사가 신규상장된 거래소에서는 최근 상장심사를 통과한 한전기공 등 5개사가 저가 공모를 꺼려 스스로 상장승인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코스닥시장 관계자 역시 "올들어 예정된 코스닥 기업공개가 잇달아 취소되고 있으며, 지난 2개월 동안엔 단 한 건도 공모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당분간 증시를 통한 기업의 장기 자금조달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시황을 좌우할 자금 수급동향 역시 연초 이래 불안한 모습을 벗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은 '코리안리스크' 우려를 들며 올들어 거래소에서만 1조5,000억원 어치를 내다팔아 이미 지난해 전체 순매도 물량의 절반을 초과하면서 수급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만 해도 그렇다. 다행스럽게 이라크전쟁이 조기에 종결된다고 해도 국내 증시는 또다시 '북핵 위기'라는 또 하나의 늪을 건너야 한다. 대우증권 신후식 연구원은 "북한에 대한 한 순간의 통제력 상실이 곧바로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지고 또 한 번의 증시 요동이 야기될 수 있는 위험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내수 위축과 기업 설비투자 지연, 그나마 경기의 버팀목이었던 수출 전망의 불확실성 등으로 가뜩이나 실물경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시점에 느닷없이 터져나온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도 증시를 압박하는 장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2월초 'SK글로벌 쇼크'가 터진 이래 투신사 머니마켓펀드(MMF) 환매사태와 이로인한 카드사 유동성 위기를 거치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이탈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올들어 거래소시장에서 외국인이 팔아치운 1조5,000여억원의 순매도 물량 중 1조2,000억원 가량이 검찰의 SK글로벌 수사 발표일인 2월26일 이후 집중됐다.

LG증권의 박윤수 상무는 현재의 증시 상황에 대해 "경기와 시스템, 지정학적리스크가 얽혀있는 상황"이라며 "확고한 정책 우선순위에 입각한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40線도 힘겨운 코스닥 올 1분기에만 9개사 퇴출

코스닥시장이 40선에 턱걸이 한 채 연일 휘청거리고 있다. 올들어 3개월 동안 6번이나 사상최저치를 갈아치운 코스닥지수는 최근 이라크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반짝 상승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연중최저치대에 근접한 40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3월22일 기록했던 94.30포인트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반토막 지수이다. 코스닥시장이 이처럼 형편없이 망가져버린 이유는 등록기업들의 취약한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과 신뢰성 상실때문이다. 코스닥시장의 근간이 됐던 벤처기업들은 벤처경기가 좋았던 2000년을 전후해 기업공개(IPO)를 실시,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공모자금도 대부분 소진하고 실적마저 나빠진 벤처기업들은 투자자들이 등을 돌려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코스닥 시장과 함께 부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리증권 최정일 연구원은 "벤처기업들의 경우 기업실적과 재무구조가 안좋다보니 약간의 경기변수에도 쉽게 흔들려 투자가들에게 믿음을 못주고 있다"며 "최근 등록기업들의 연이은 퇴출사태가 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를 반영하듯 올 1분기에만 9개사가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됐다. 자본잠식비율이 50%를 넘어가 액면가에 못미치는 주가로 외부회계법인이 감사 의견을 거절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강원랜드, SBS, 엔씨소프트 등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의 거래소 이전 결의도 코스닥시장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코스닥시장의 경우 시가총액 상위 20개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8일 현재 48.75%로 절반에 가깝다. 이들 가운데 상당 기업이 거래소로 빠져나가면 코스닥시장은 여기서 또다시 반토막이 나며 그마나 남아있던 투자자들마저 외면하게 될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날로 쇠약해져 가는 코스닥시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수 있도록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감독위원회도 같은 관점에서 지난해 11월 퇴출제도 강화, 투자자 보호를 위한 공시제도 엄격 적용 등을 골자로 한 코스닥시장 신뢰회복방안을 내놓았다. 코스닥시장 관계자는 "정부나 공적기관의 자금투입 같은 응급처치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이보다는 지속적인 시장감시기능 강화와 기업들의 자구책으로 코스닥시장의 우량기업 비율을 높이는 게 장기적으로 신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인터뷰/우 영 호 증권연구원 부원장

"증시 위기는 신뢰부족에서 출발합니다."

한국증권연구원 우영호(禹英浩·사진) 부원장은 9일 "주식시장은 투자자들이 안정적으로 장기 투자할 수 있고, 기업이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의 시장은 두 역할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신뢰도가 낮다 보니 주식과 채권을 사들인 펀드가 손실이 나고, 대우채 사태와 SK파문에 따른 환매사태처럼 펀드가 망가지다 보니 투자자들이 자연히 주식시장에 등을 돌린다"는 게 우 부원장의 지적이다. 외국인은 떠나고, 기관투자가는 손발이 묶여있고, 개인은 간접투자상품 대신 투기적 직접 매매에만 빠져있는 것이 한국 증시의 현실이다.

"우선 엄격히 제한돼있는 유가증권의 범위를 확대해 증권사들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내고 기업금융(IB) 경험을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 부원장은 현재의 은행 중심의 '관치금융'시스템이 증권사들의 창조적 상품개발과 판매를 막고, 주식 매매 중개에만 치중하는 '절름발이'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투신사와 기업·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낮다 보니 돈이 은행으로만 쏠려가고, 은행의 주식투자는 1%밖에 안되는 자금흐름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산업 구조조정에 대해 그는 "현재 증권사들은 위탁매매업무에만 매달려 있을 뿐 기업금융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인수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노하우와 경험, 자본력 축적이 부족하다"며 "시너지 효과가 적은 인수합병 등 덩치키우기 보다는 부문별 특화와 전문화를 통해 후발 해외시장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할 때는 한국 증권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 부원장은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전세계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거래소와 코스닥·선물시장 등 거래시장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고 기업들의 지배구조개선과 시가 배당 확산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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