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글 시공사·동서문화사 발행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글· 타샤 튜더 그림 시공사 발행
봄꽃이 너무나 풍성하고 아름다워 일부러 늦은 밤에 골목에 나가 본다. 가로등 불빛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잃은 지 오래된 도시의 밤이지만 사과꽃, 목련, 벚꽃이 낮보다 더 뚜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자연이 가깝게 느껴질 때면 아이 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어린이책이라야 계몽사에서 나온 빨간 표지의 전집이 전부고, 외국 풍경은 달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시절,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꽃과 나무 이름이 무진장 나오는 책이 있었다. 도대체 작가가 그리는 그곳은 어떤 곳일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던 책. 그것은 바로 '앤'과 '비밀의 화원''이다.
이 낯익은 제목을 보고 이미 아는 이야기인데 또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면 완역본을 읽으라고 권한다. 이 책은 줄거리만으로는 그 진가를 알 수 없다. 작가가 묘사하는 대로 읽어 나가노라면, 어느새 자연의 아름다움과 아이들의 생기를 듬뿍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재잘대는 앤의 이야기와 화려한 수사로 가득한 풍경 묘사를 머리로 그리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상상력과 활기가 넘치는 앤이 에이번리 마을 곳곳에 붙여준 '빛나는 호수' '환희의 하얀 길' '한가한 황야' 같은 이름 때문에 지금도 햇빛에 반짝이는 저수지의 잔물결을 보면 그 '빛나는 호수'가 떠오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곳에 벚꽃이 만발하고, 집 양 옆으로는 사과나무와 벚나무가 꽃잎을 흩날리는 과수원이 있고, 나무 아래 풀밭에는 민들레를 뿌려 놓은 듯하고, 라일락 향기가 아침 바람을 타고 창가에 밀려오는 방. 이 방이 앤의 방이다. 정원 아래로 시냇물이 흐르고, 자작나무, 가문비나무와 전나무가 자라는 숲속에는 고사리와 이끼와 온갖 숲속 식물이 자라고, 앤의 친구 다이아나 집 마당에는 미나리아재비, 금낭화, 작약, 수선화, 장미, 매발톱꽃, 사포나리아, 참나리가 꽃을 피운다.
'비밀의 화원'도 '앤'에 못지않다. 히스와 가시금작화와 양골담초만이 자라는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무지가 있고, 알뿌리에서 나온 연두색 싹들은 아네모네, 크로커스, 수선화, 백합, 붓꽃으로 피어나고, 큰 담장으로 둘러싸인 비밀의 화원은 온통 덩굴장미로 뒤덮여 있다.
책이 주는 상상의 폭과 깊이를 만화영화나 영화가 어찌 대신하랴. 책 속에는 읽을 때마다 다르게 창조되는 상상의 세계가 있다. 싱그러운 봄날, 물기 머금은 공기에 떠도는 꽃 향기와 흙 냄새, 그 위를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옛날의 감정을 되살리며 아이와 같이 읽어보자. 대화만으로는 찾기 힘든 느낌의 공감대가 생기리라.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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