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는 내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잘 난 나라이어서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나라이기 때문도 아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그리고 자식이 부모에게 정을 주듯이, 그렇게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정의가 살지 않고 불의가 판을 치며 이기적이며 비루한 행동이 '현실'과 '국익'으로 포장되는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조국이 아니다.어른은 아이에게 올바로 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자기는 온갖 짓을 다 하며 이익을 챙긴다. 때로는 법과 질서를 들먹이고 때로는 전통과 관행을 팔며 때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강변한다. 대통령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개시되자 별 고민 없이 바로 지지를 선언했다.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던 대통령이 왜 그랬을까?
그는 물론 국익을 이유로 내세웠다. 파병하면 미국이 북핵 문제에서 우리 말을 잘 들어줄 것이라는 논리인데, 안타까운 기대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조선을 일본에 넘기고(카쓰라-태프트 조약), 이승만의 그 눈물겨운 독립 호소에 콧방귀만 뀌고, 무엇보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민족을 두 동강낸 나라다. 이라크 침략 자체가 미국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면 우리 경제에 주름살이 진다? 그럴 듯한 말이지만, 언제 한 번 증명된 적이 있는가. 우리가 미국에게 어떤 작은 도전이라도 해서 그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진 적이 있는가 말이다.
나는 이라크 파병이 우리의 장기적인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듯한 국익론의 진정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국익론은 미국에 대한 두려움과 한미관계의 타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했을 뿐이다.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건 많은 이들은 대미 종속을 허무는 어떠한 시도도 낯설고 두렵다. 그것이 국익론의 진정한 실체다. '반미'운동을 감정적이라고 비판하는 '현실주의자'들의 '냉정한 계산'은 실상 두려움과 타성의 겉포장일 뿐이며, 그것이 기득권층의 자기 이익과 뒤엉켜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로서 자격 미달이다. 판문점을 미국이 지키며 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이 쥐고 있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미군의 계속 주둔을 애원하면서 성조기를 휘날리는 나라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변방에서 자기 정체성 찾기가 활발해진다고 모든 세계화론 교과서가 언급하건만, 대한민국에서는 어디서 이런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오히려 모든 것을 미국 기준에 맞추지 못해 안달이고 심지어 자기 말과 글까지 미국 것으로 바꾸자고 나서는 나라다. 국방을 다른 국가에 의존하면서도 그것을 문제라고 느끼지 못하는 나라. 동족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이방인이 계속 지켜달라고 애원하는 나라. 그 50년 동안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길래 아직도 우리 힘으로 북한군의 침공을 막지 못한다는 말인가?
남의 나라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실현될지 어떨지도 모를 자그마한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는 꼬마들의 나라. 나쁜 짓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실리를 위해''형편이 그러니' 장부 좀 조작하고, 새치기 좀 하고, 앞에 나서지는 못하니 뒤에서 강도짓 좀 도와주고, 서로서로 못 본 척 멋쩍은 미소 짓는 소시민의 나라. 진짜 악당도 되지 못하고 자신도 없으면서 공허한 허세로 이웃 나라에 큰소리 치면서 뒤로는 알맹이 다 뺏기는 나라. 큰 나라가 인상 쓰기도 전에 허둥대며 매달리는 나라.
나는 이런 내 조국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대통령으로선 어쩔 수 없었을 거야'하며 애써 자위해 보려는 나 자신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김 영 명 한림대 사회과학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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