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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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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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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낚시꾼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낚싯대를 잡았습니다. 아주 중증이었죠. 밥을 먹다가 국그릇에서 찌가 솟아오르는 환영을 볼 정도였으니까요. 주말마다 물가를 찾아 밤을 샌 것은 물론입니다. ‘죽어야 낳는 병’이라고 합니다. 정말 죽어야 그만 둘 것 같았습니다.그런 낚시를 그만 둔 지 2년쯤 됩니다. 큰 이유가 있습니다. 늦둥이 딸을보게 됐고, ‘아이의 건강과 복을 위해 이제 살생을 그만 하라’는 집안어른들의 추상 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누구나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꼼짝마’입니다.

처음에는 많이 괴로웠습니다. 주말마다 재미와 휴식을 주던 프로그램이 중단됐으니까요. 애인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슬프고 허탈했습니다. 하릴없이낚싯대만 만지작거리고 한숨만 푹푹 쉬었습니다. 역시 세월은 약입니다.

1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는 거의 잊었습니다. 이제는 낚시꾼이 아닙니다.

취미 하나를 포기하면서 얻은 소득이 있습니다. 물(水)을 대할 때의 마음입니다. ‘생각에 따라 보이는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 새삼 느낍니다.

예전에 물을 보는 눈은 이랬습니다. 특히 저수지를 보면 말이죠. 머리 속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수초가 우거진 상류 쪽은 봄이면 산란을 하는 붕어가 우글대겠고, 수심이 깊은 제방 쪽은 여름에 대어가 올라오겠지…. 거의저수지 분석가입니다. 저수지는 물을 담아 놓은 곳이 아니라 붕어가 사는집이었습니다.

주산지를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은 4년 전입니다. 낚시꾼이었을 때죠. 산 위에 저수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이번에는 취재를 위해 갔습니다. 같은 물을 바라보았지만 감상은 전혀달랐습니다.

주산지는 오래 된 저수지입니다. 세월을 겪으면서 인공의 저수지는 자연과동화했습니다. 맑은 물은 봄빛을 머금으면서 신비로운 빛을 띠었습니다.

열을 지어 물 속에 뿌리를 내린 왕버들의 나이는 200년이 다 된다고 합니다. 푸른 물 속에는 용은 아니더라도 용 만큼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고생각했습니다.

4년 전 주산지에 대한 감상은 무엇일까요. ‘무슨 나무들이 이렇게 물가에많지? 낚싯대를 휘두르는 것도 그렇지만 낚싯줄을 끊어먹겠어. 이 저수지는 꽝이야.’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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