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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69>月下의 盟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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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69>月下의 盟誓

입력
2003.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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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9일 한국 최초의 극영화로 평가되는 '월하의 맹서' 시사회가 서울 경성 호텔에서 열렸다. 그 뒤 이 영화는 일반 극장에서는 개봉하지 않고 여러 지방의 공공기관에서 상영되었다.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제작한 '월하의 맹서'는 그 비장미 넘치는 제목과는 달리 복수(復讐) 이야기나 순애보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제목에서 맹서는 푼돈을 여투어가며 성실히 살겠다는 맹서다.스토리는 이렇다. 서울에서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영득(권일청 분)은 주색잡기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다. 노름방에서 몰매를 맞아 사경을 헤매던 그는 약혼녀 정순(이월화 분)의 정성스러운 간호로 쾌유하고, 정순의 아버지는 그동안 저축해둔 돈으로 영득의 빚을 갚아준다. 영득은 그제서야 저축의 고마움을 깨닫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맹세한 뒤 정순과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요컨대 '월하의 맹서'는 저축을 장려하는 계몽 영화다. 언론인 출신의 연극인 윤백남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이 영화는 주인공이 회심에 이르기까지의 신파적 에피소드들이 변사의 걸쭉한 입담과 어우러져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다고 한다. 국책 홍보 영화라는 점 때문에 당시 '월하의 맹서'를 둘러싸고 어용 시비가 일기도 했지만, 연출자 윤백남이나 여주인공 역의 이월화는 1920년대 연극·영화를 대표했던 인물들이다. 민중극단의 창립자인 윤백남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 대중소설 '대도전(大盜傳)'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1930년대 중반 이후 중국 동북지방에서 살다가 해방 뒤 귀국해 한국 전쟁 때는 해군 중령으로 복무했고, 종전 뒤에 서라벌 예술대학 학장을 지냈다. 민중극단과 토월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일세를 풍미하던 이월화는 토월회를 이끌던 박승희와의 사랑이 어긋난 뒤 좌절에 빠져 29세로 요절했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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