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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高 위기, 특성화 교육으로 "탈출"/신정여상 ERP강의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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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高 위기, 특성화 교육으로 "탈출"/신정여상 ERP강의 교육장

입력
2003.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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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시스템으로 와보세요. 팝업(pop-up)창에 '거래처'가 보이지요? 거래처정보를 그때그때 입력하면 시간 낭비니까 한꺼번에 등록해놓고 불러 사용하는 거예요. 대성, 신정, 대연 학생들 모두 다 알겠죠?"LCD프로젝터의 모니터에 팝업창이 뜬다. 학생들도 각자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열심히 움직이며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선생님의 지시를 따른다. 모니터에는 조그만 채팅창도 띄워져 있어 선생님과 열심히 문답을 주고받는다.

신정여상에서 이루어진 전사적자원관리(ERP) 실습교육장. 이 학교뿐 아니라 대전 대성여자정보과학고, 부산 대연정보고 등 3개교 120여명이 함께 참여해 원격 수업을 한다. 기업정보화지원센터의 강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ERP강의를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 것이다. 오프라인 교육에 사이버대학 강의방식을 도입한 이 첨단 강의는 정보통신부가 연간 10억원을 투자해 전국 60개 실업계 고교 학생 2,400명과 교사 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보화인력 육성책으로 올해가 시행 2년째다.

ERP는 대기업 뿐 아니라 전 기업으로 확산된 관리방식으로, 취업 후 활용도가 높아 학생들에게 반응이 좋다. 지난해 이 교육을 받고 후배들에게 도우미 역할을 하는 권성미(18)양은 "학교에서 배우던 내용보다 용어가 훨씬 현실적인 것 같다. '수주' 같은 용어를 뉴스 같은 데서 접하면 왠지 기분이 뿌듯해진다"고 말한다. 신정여상의 경우 각 학급에서 5명씩 선발했으며 다른 학교도 지원자가 수용규모보다 많아 나름의 선발과정을 거쳤다. 주 1회, 3시간씩 3개월동안 진행하며 수강료는 없다.

쌍방향 멀티미디어 수업 방식도 만족도가 높다. 신정여상 ERP담당 최하생 교사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해서인지 더 경쟁적으로 열심히 참여한다"고 말한다. 유선영(18)양은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하려면 왠지 쑥스럽지만 채팅으로 질문을 하면 자연스럽고, 배운 것을 그때그때 완벽하게 알고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ERP실습교육에 대한 호응은 이런 현장감있는 수업이 실업계고교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현재 몇몇 실업 명문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취업보다는 대학진학을 희망하며 이를 위해 상당수 학생은 인문계 고교로 전학을 가려 한다. 게다가 '공부 못하는' 학생을 실업계로 보내는 식의 진학지도, 실용성이 떨어지는 기술교육 등이 맞물리면서 실업교육은 기로에 서 있다.

따라서 실업고에게 이러한 '교과과정 업그레이드'와 특성화교육을 통한 변신이 절실하다는 게 일선의 의견이다. 많은 실업고가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선린인터넷고나 한국조리과학고, 자동차고교 등은 경쟁률이 3대 1 이상이다. 최 교사는 "선택을 잘하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며 "부모들도 이미 고학력 실업의 실상을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상고출신 대통령도 두 명이나 배출했고 은행장이나 주요 기업 CEO도 상당수"라는 최 교사의 말처럼, 실업고에 대한 인식개선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ERP수업처럼 교과과정 개선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필요하다. 최 교사는 "교육당국이 말로만 교육개혁을 외칠 게 아니라 학력보다 실력에 따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은경기자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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