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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경주 계림(鷄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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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경주 계림(鷄林)

입력
2003.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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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씨 탄강(誕降)설화의 무대였던 계림. 현재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많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과거 경주에는 경상도에서 가장 많은 15개의 마을숲이 있었다. 최원석 박사의 '영남지역의 비보' 연구에 따르면 이 마을숲 중 11개가 현재의 경주시내에 있었으며, 그 중 7개는 형산강의 지류인 북천과 서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수해방지림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숲으로는 진흥왕 5년(544) 대흥륜사를 건축하는 데 필요한 목재를 공급했다는 천경림(天鏡林), 분황사에서 지금의 보문호뚝까지 북천변을 따라 5리에 걸쳐 숲을 조성하였다 하여 명명된 오리수(五里藪)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숲들을 볼 수가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이미 많은 숲이 훼손되었고 해방 이후 보문호와 덕동호가 건설되면서 북천과 서천의 범람을 막는 수해방지림의 기능도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림만은 살아남았다.

계림이 오랜 세월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가 이 숲에서 탄생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계림은 원래 시림(始林)이라고 불리던 숲이었는데, 김알지를 담고 있던 금궤가 닭 울음소리와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에 계림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김알지의 6대손이 신라의 13대 미추왕이 되면서 이 설화는 경주 김씨만이 아닌 신라의 설화로 발전되었고, 이후 오랜 동안 누구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이렇게 신화가 살아 숨쉬는 계림이 지금은 친근한 마을숲이 되었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자유로이 이 숲을 거닌다. 물이 흐르는 도랑과 야트막한 돌담으로 주위와 구분된 계림은 그 담 높이만큼이나 문턱이 없다. 나는 이 계림에서 자유로움과 넉넉함을 느낀다. 만약 사적 제19호인 계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둘레에 금줄을 치고 오는 사람들을 막았다면 지금처럼 경주 시민과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계림은 경주의 수많은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이 숲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며, 매일 조금씩 자라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계림의 주인인 나무들이 죽어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화재 수리의 가장 큰 원칙은 원형보전인데, 이 숲은 매년 조금씩 그 원형을 바꾼다. 다른 모든 문화유산은 훼손된 부분에 한정하여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수리하면 되지만 숲은 다르다. 아무리 인간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도 죽어가는 왕버들, 느티나무, 회화나무와 똑같은 나무를 만들어 심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계림의 주인은 자연의 순리대로 점차 쇠약해지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숲 사이에 어린나무를 심고 가꾸며 기다리는 것뿐이다. 기다림의 결과는 명확하다. 이 어린나무가 자라 계림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경주를 찾은 우리 아이들을 변함없이 맞이하는 것이다.

/배재수·임업연구원 박사 forestor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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