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바그다드가 아비규환 속에 폐허로 변하고 있다. 전날 바그다드 시내로 진공한 미군은 8일 A―10 전투기와 탱크, 미사일 등을 동원해 바그다드 완전 점령에 나섰다. 시가전이 본격화하면서 바그다드 시내가 전장으로 돌변, 군인 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희생도 커지고 있다.며칠째 수돗물과 전기가 끊긴 바그다드 시내의 병원 주변은 부상자와 주검으로 넘쳐 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부다비 TV는 8일 곳곳에서 검은 포연이 솟아오르고, 이따금씩 총격전 소리가 들리는 바그다드 모습을 그대로 방영했다. 알 라시드 호텔 등 시내 주요 지역에 매복한 이라크 저격병들이 총구가 불을 뿜었다. AP의 아랍계 기자는 바그다드 한 거주지역에서 한데 모여 있던 세 채의 가옥이 포탄에 맞아 쑥대밭이 됐다고 전했다. 이 곳에서만 9명이 숨졌다. 도로변의 교통 신호등은 폭발로 검게 그을렸고, 도로 표지판들은 부서져 나뒹굴었다.
바그다드는 전화선도 거의 끊겨 외부세계와 고립된 상태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건물 밖에는 국제전화를 사용하려는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건물 밖에는 "상황이 악화하면 전화 서비스가 일시 중단될 것"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미영 연합군에 대한 승전 소식을 전하던 이라크 TV의 아침 뉴스도 중단됐다. 대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대중집회에 참석한 가운데 애국적인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의 해묵은 장면만 방영됐다.
알 킨디 병원 응급병동에는 주검이 담긴 자루들이 시체 안치소 밖에 쌓여 있었다. 민간인들을 가득 채운 구급차들이 계속 도착했다. 팔·다리와 머리에 화상을 입은 부부가 들어왔다. 이들은 최근 격전이 벌어진 남부 알 두라구(區) 주민이다. 병원 안에서는 하젬 모하메드 자빌(37)이 부상으로 왼쪽 눈을 뜨지 못하는 일곱살 난 아들만을 안고 있다. 자빌은 기자들을 보더니 아들에게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라고 시킨다. 부상한 한 민병대원은 침을 바닥에 내뱉으며 미국을 저주했다. 바그다드에서 활동중인 ICRC는 "직원들이 밤낮으로 일하고 있지만 한 시간에 100명 꼴로 부상자가 몰려들어 감당하기 힘들다"며 "의약품 공급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카페에서 담배를 피워 물거나, 집 밖에서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으나 이날 바그다드에는 인적마저 끊겼다.
한편 미 폭스 뉴스는 7일 이라크 주민들이 바그다드에서 민병대에 저항해 폭동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폭스 뉴스는 쿠웨이트 KUNA 통신과 이란 언론들을 인용, 바그다드 내 3 곳에서 민간인들과 사담 페다인 민병대 사이에 유혈 충돌이 발생해 민병대원 35 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폭스 뉴스는 또 "민간인들에 밀린 민병대 지도자들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도망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 내용이 사실일 경우 미군은 회심이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압도적 승리를 기정사실화해 민간인들이 사담 후세인 정권에 맞서게 함으로써 시가전의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미군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특히 7일 오전 바그다드 중심부를 장악한 것이 이라크군과 민간인들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미군이 지어낸 또 다른 심리 전술일 가능성도 있다. 폭스 측은 바그다드 현지의 자사 특파원과 미 국방부가 이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는 시민들의 약탈 등으로 무법 천지로 변했다고 AFP통신이 7일 보도했다. AFP는 영국군의 바스라 점령이 거의 완료된 7일 권력 진공 상태에 빠진 시민 수천 명이 은행과 대학, 공공건물 등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치고 있다고 전했다.
/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