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암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비네타 마리노비치(31·여)는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러 가는 방송국 프로듀서였다. 그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구 유고연방)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독일계 RTL 방송국의 뉴스 프로를 담당하고 있다.그가 기자의 관심을 끈 이유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그다드로 들어가겠다는 무모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조국에 남의 나라 전쟁을 보도해야 하는 그에게서 묘한 역설이 느껴졌다.
마리노비치는 19살(1991년) 때 세르비아의 슬로베니아 침공으로 시작된 유고 내전을 맞았다. 1년 후 스무 살 때부터 방송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10년이나 계속된 유고 내전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긴 살육과 보복,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지인들이 사라져 갔는지를 굳이 열거하지 않았다. "사랑하던 카메라맨 남자친구가 97년 내전을 취재하던 중 세상을 떠난 게 아직도 미혼인 이유"라는 한마디가 그가 겪었던 유고 내전의 슬픔을 압축해주고 있었다.
우문이지만 남의 나라 전쟁을 보도하는데 왜 위험을 무릅쓰느냐고 물었다. "또 다른 전쟁을 막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우리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라"면서 "내전이건 국가간 전쟁이든 전쟁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비인간성을 목도한 그의 충고를 들으면서 이라크가 아닌 한반도가 떠올랐다. 미국의 '다음 타깃'으로 북한이 거론되고 있다는 외신보도를 떠올리며 기자의 가슴에는 "전쟁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한다"는 그의 절절한 말이 깊게 새겨졌다. /암만에서
김용식 특파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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