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없는 화마(火魔)가 동해안 일대를 할퀴고 간 지 3년. 산은 울창했던 모습 대신 듬성듬성 심은 싸리비 같은 묘목으로 몸뚱이를 가리고 있다. 검게 탄 밑동과 숯 기둥이 된 나무 주검은 아직 재앙의 땅을 지키고 있다. 어디 산뿐이랴. 덮을 이불 하나 건지지 못하고 몸뚱이만 달랑 빠져 나와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의 마음 역시 상처는 남았다. 주민들은 이웃이 산불과 화병으로 세상을 등진 악몽의 자리에 다시 집을 짓고 삶의 실 타래를 이어가고 있다. 황량한 산이 진달래 개나리를 피워 봄소식을 전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이 주민들은 아픔을 간직한 채 골짜기마다 버티고 서서 화마의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여의도 78배 면적 잿더미로 생태계 복원 30∼40년 예상
2000년4월 동해안 일대를 휩쓴 산불은 여의도 면적의 78배(2만 3,794㏊)나 되는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불은 7일 강원 고성과 강릉, 삼척 등에서 동시 발생했다. 진정 상태를 보이던 산불은 9,10일 건조한 기후와 순간 최대풍속 초당 27m 강풍 때문에 남은 불씨가 다시 타면서 남쪽으로 확산돼 도 경계 부근인 가곡천을 넘어 경북 울진까지 번졌다. 벌목 작업을 한 뒤 치우지 않고 쌓아놓았던 간벌목과 솔방울 등이 바람을 타고 수십m를 날아가 곳곳에 옮겨 붙으면서 재앙을 키웠다.
9일 동안 계속된 산불은 삼척 1만6,751㏊, 고성 2,696㏊, 동해 2,244㏊, 강릉 1,447㏊의 산림을 태우고 사망 2명, 부상 15명의 인명피해와 299세대 850명의 이재민을 냈다. 재산피해는 1,072억원으로 집계됐지만 30년 이상 채취가 불가능하게 된 송이 피해 등 유무형의 손실은 수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1995년7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처음으로 동해안 산불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정신적 피해와 어장황폐화 등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땅속의 미생물과 각종 양분까지 모조리 태워 먹이사슬의 토대가 끊어지고 동식물의 서식처가 파괴돼 생태계 복원에만 30∼40년 소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찬유기자
"불 이야기 꺼내지도 마래요"
3년 만에 찾은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30여 채의 가옥이 불에 타고 1명이 숨져 가장 피해가 컸던 마을이다. 넋을 놓아버려야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던 참혹한 풍경은 먼 기억 속의 일일뿐, 마을은 변해 있었다. 7번 국도변에 자리잡은 건 여전하지만 현대식 양옥이 길게 늘어섰다. 틈틈이 낀 쓰러질 듯 낡고 초라한 슬레이트 가옥은 요행히 산불 피해를 면한 집이다.
번듯하게 차려놓은 구멍가게를 들어섰다. 3년이나 지났건만 가게 주인은 기자를 알아본다. "어데 불 난 거 아니래요, 뭣하러 여길 또 와요." 화재 당시 찾아왔던 기자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수상했을까. 토박이 김진녀(68·여) 할머니가 안절부절못하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약통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듬해 영감은 화병으로 보내고 나도 심장약으로 버텨요."
"불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던 할머니가 한참이나 가슴을 쓸어 내리더니 말을 이었다. "내 평생 처음이래요. 까마득하고 꿈 같아요. 도깨비불 같은 불덩이가 저가 붙고 여가 붙고 우리 가게도 홀랑 다 탔어요. 대목 준비한다고 물건도 많이 쟁여 놓았는데…." 할머니의 산불 기억은 끊어진 조각처럼 아귀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날짜와 들고난 사람들의 얼굴만은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 난리통에 숟가락 하나 챙길 겨를도 없었는데 많이들 도와줬지. 그 공 다 못 갚지."
마실 나온 박본이(67·여) 할머니도 기자를 알아봤다. 거동을 못하던 할아버지를 구출했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던 박 할머니가 "겁나 겁나, 그만해" 하고 대화에 끼어 들었다. "이맘때만 되면 연기만 보여도 가슴이 떨린다니까. 헬기만 지나가도 흠칫 놀라 밖으로 나오는데 뭘. 쓰레기도 허투루 안 태워. 그랬다간 이웃끼리 대거리하고 바로 신고 들어간다니까."
"집을 새로 지어 마을이 깔끔하다"고 슬쩍 묻자 "이게 다 빚이래요."하고 되받는다. "70%밖에 못 받았어. 작년에 놀러 온 대학생들이 부자마을이라고 하는데 어찌나 기가 막히든지…." 그뿐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 팔로 둘러도 어림없던 소나무들이 다 타는 바람에 송이 캐는 일도 끝장났어." 해녀 현선(68) 할머니는 "바다 밑이 온통 허연 재로 뒤덮여 전복도 없고 미역도 안 맺힌다"고 했다. 도로 너머 바닷가 마을 해녀들은 사방공사 품팔이를 하며 바다일 대신 산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도를 따라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불을 피해 주민들이 쪽배에 몸을 싣고 해상으로 탈출했던 원덕읍 노곡리 노곡항. 10여 척의 어선이 닻을 내리고 있다. "(배가) 나가야 하는데, 잿물 땜에 고기도 없고 멀리 가자니 기름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황윤덕(57)씨가 사정을 설명했다. "숯덩이가 된 산도 산이지만 사람들 머리에 박힌 불 귀신하고 죽은 바다는 누가 책임집니까." 산불 공포는 아직도 주민들 주위를 맴돌고 있다.
불씨 하나에도 민감, 온 주민이 산불감시
화마에 이어 지난해 수마(水魔)까지 들이닥쳐 마을과 주변 산야가 쑥대밭이 된 강릉시 사천면 일대는 나무심기와 농지정리가 한창이다. 나무 심는 사람들과 묘목 운반차, 급수차 등이 늘어선 산등성이마다 쉴 새 없이 나무를 심고 버팀목을 세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해로 토사가 밀려온 논밭을 뒤엎는 굴삭기의 굉음도 들렸다. "나무를 심고 심어도 끝이 없다"는 한 인부의 넋두리처럼 아직 수많은 산 등성이, 등성이가 손에 쥐면 물기 없이 부서지는 누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봄 꽃과 지난해 심은 나무들이 파란 싹을 피워 황량함을 덜어 보지만 산불의 상처는 크고 깊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죽어나간 자리엔 벚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등의 묘목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연 복원이냐, 인공 조림이냐는 논란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지역 주민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물 주고 가꾸면 그게 제일이지 왜 그리 입씨름들을 하는지…." 나무를 심은 자리, 저절로 새싹이 난 자리마다 물을 뿌리는 사람들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주민들은 평소에는 닭살 돋아 입에 담지 않았을 "희망"을 이야기했다. "외부사람이 보기엔 아직도 산불 뒤처리가 안된 것 같아도 골짜기 골짜기 살펴보면 정성스럽게 심은 나무들은 해가 다르게 크고 있고 돌보지 않은 곳도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고 했다.
산불의 공포를 온몸으로 겪은 동해안 주민들이 산불 감시에 발벗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청솔공원묘지 정상 등엔 산불 감시를 위한 무인 이동카메라가 있고, 매일 감시 헬기가 뜨고 산불 조심 홍보 방송이 마을과 골짜기를 메운다. 석교1리 김동혁(60) 이장은 "다음달 15일까지는 입산이 통제되기 때문에 산 어귀마다 주민들이 지킨다"고 했다. 56가구 중 28가구가 삶의 터전을 잃은 마을이기에 불씨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삼척시 화재의 발화지였던 근덕면 양지마을로 가는 길목에도 빨간 조끼를 걸친 백발의 촌로들이 지나가는 차를 유심히 살핀다. 청년들은 모두 제 살길 찾아 떠난 터라 대부분 노인들이 산불 감시를 맡고 있지만 담배라도 빼 물라치면 언제 왔는지 "어디서 오셨소. 거기서 담배 피우면 안 돼요" 하며 주의를 줬다. 매일 도시락 싸들고 근덕면 교곡2리 삿갓봉 정상 감시탑에 올라 산불 감시를 하는 김석이(65)씨도, 구마리 영은사 앞 감시초소를 지키며 입산 통제 일지를 꼼꼼히 작성하는 김원해(50)씨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일당 2만 8,000원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바람이 심상치 않아. 3년 전에도 꼭 이 바람이었거든."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바람을 유심히 관찰하던 김석이씨가 긴장한 듯 목 안 가득 침을 삼켰다.
자꾸 지나간 산불 이야기만 하는 게 못마땅했던지 강릉시 사천면 석교1리 김진홍(74)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무지한건 사람이래요. 그 큰 불 나도 나무가 자라는걸 보래요. 사람이 나 몰라라 하면 되겠어요. 끔찍한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잘 지켜야지요."
/강릉 삼척=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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