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한창이고 세계적으로 경기도 안 좋아 걱정이에요. 전쟁이란 상대국에 대한 편향된 이미지나 문화적 이해 부족도 한 원인일 거예요. 뮤지컬 '명성황후'는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를 잘 알릴 수 있는 작품이어서 제 공연을 동포건, 미국인이건 많이 보면 세계평화에 작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4월18일∼5월4일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 무대에 오르는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 공연을 위해 12일 미국으로 떠나는 명성황후 역의 이태원(37)씨는 잠시 표정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환해졌다. 미주 한인 10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공연이어서 교민의 관심이 큰 데다 1998년 10월의 LA 공연 이후 지금까지 재공연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뮤지컬 본고장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2년 반 동안 '왕과 나'의 티앵 왕비 역을 맡았고, 같은 역으로 영국 최고 권위 연극상인 로렌스 올리비에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화려한 경력의 그이지만 역시 '명성황후'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다. "뮤지컬 출연 섭외는 굉장히 많이 들어 오지만 이미지가 맞지 않은 새로운 뮤지컬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왕과 나'나 '명성황후' 때문인지 왕비 역 제의가 많이 들어 오는데 어디 '명성황후' 따라 갈 왕비 역이 있겠어요?"
그래도 내년에 5개월 동안 국내에서 라이센스 공연될 '마마미야'는 "꼭 한 번 해보고 싶고, 하게 될 것 같다"고 의욕을 보였다. 2000년 '왕과 나' 공연 차 영국에 갔다가 '마마미야'를 보는 순간 곧바로 "내 것"이라고 찍었고, "일단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꼭 하는 성질이어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언뜻 터무니 없게 들릴 수도 있는 그의 자신감은 최근에 낸 '나는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다'(넥서스BOOKS 발행)를 읽으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유복보다는 불우에 가까운 가정 환경, 재능 있는 동생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았던 어린 시절,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간 후 겪어야 했던 차별, 이별로 끝난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진솔하게 담았다. 그런 어려움을 악과 깡으로 이기고, 피땀 나는 노력으로 줄리어드 음대를 나와 브로드웨이에 주역으로 진출하고, 티앵 왕비를 거쳐 명성황후 역으로 한국 뮤지컬계의 여왕이 되기까지의 성공담이 담긴 것은 물론이다.
"처음 출판사에서 책을 쓰라는 제의를 받고는 거부감을 느꼈어요. 얼마나 살았다고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청소년에게 교육적 내용으로 간접 경험을 하도록 하자는 제의여서 받아 들였다가 글 쓰느라 대여섯 달 혼이 났어요."
혹시 춤이 서툴어 다른 뮤지컬을 피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발끈했다. "춤이건, 악기건 기본기는 다 익혔어요. 잘 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대에 서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서울 역삼동 29평 빌라에서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그는 뮤지컬과 솔로 공연, 뮤지컬 개인 레슨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을부터는 "어쩔 수 없이" 몇몇 대학에도 출강해야 한단다. 그런데도 연신 "너무너무 행복해요"다. "처음에는 한국이 낯설고 아는 사람도 없어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아요. 원하는 일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일의 보람과 성공이 자신의 노력은 물론 고마운 사람들의 덕분임을 아는 그의 키는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