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너머 / 남촌에는∼ / 누가∼살길래 / 해마다 / 봄∼바람이 / 남으로 오네…'3일 오후7시 인천 부평구 갈산동 인천북부소방서 3층 대강당. 회색 빛 건물 밖으로 우리 귀에도 익은 가곡 '남촌'의 감미로운 선율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강당 중앙에서는 화사한 봄옷 차림의 주부와 제복을 입은 소방대원들이 어우러져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한껏 목청을 돋우고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악보를 주시하다 화음이 서로 안 맞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연습을 하는 2시간 내내 강당에는 평온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소방대원과 주민들이 한 마음이 된 합창단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탄생했다. 인천북부소방서가 지난달 27일 발족한 이 합창단은 소방서와 지역 주민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자는 뜻에서 '섬김과 사랑의 119'로 이름을 정했다.
단원은 20대 소방대원부터 6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다. 정규직 소방공무원 30여명,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여성의용소방대원 10여명, 부평구에 거주하는 주부 30여명 등 모두 70여명이다.
이들은 비록 아마추어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과 관심만은 여느 기성 합창단에도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상당수는 학창시절 콩쿠르에서 입상했거나 음악동호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어 연습하기에 따라 '격조높은 화음'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천주교구내 서울 그린합창단의 부단장으로 총지휘를 맡고 있는 주부 나영희(61)씨는 "반회보를 통해 소방서 합창단원 모집 소식을 접하고 응했다"며 "잘 조화된 화음은, 팀워크가 필요한 화재 진압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대원들도 합창단의 일원이 된 것에 크게 고무돼 있다. 대학시설 그룹사운드 활동(피아노)을 했다는 소방교 안군오(32)씨는 "격무에 시달려 취미활동은 생각도 못했다"며 "그러나 합창단에서 노래할 수 있게 돼 요즘은 생활에 활기가 돈다"고 즐거워했다. 화재진압요원인 1년차 여자소방사 장혜실(24)씨도 "노래를 같이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주민들과 대화, 화합의 시간도 갖게 돼 업무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대원들의 정서를 함양시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열린 소방행정을 구현하자는 취지로 발족했다.
"소방대원들이 하루 2교대의 격무에 시달리고 늘 긴장하느라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는 것을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취미나 여가 없는 생활은 업무의 효율성도 크게 떨어뜨릴 수 있거든요. 주민들에게 소방행정을 알리고 대원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합창단 발족을 주도한 심평강(47) 인천북부소방서장은 주민의 협조가 신속한 화재진압과 안전사고 방지의 첩경이라고 항상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주민과 대원이 함께 노래하고 대화하면 소방행정의 효율성도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심 서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한 이후 소방관서를 주민들에게 개방, 단체와 기관 등 5만 여명에게 소방서 견학 기회를 제공했다. 또 올해 초부터는 매주 1회 주민들에게 응급처치술을 강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합창대회에 참가한다는 등의 계획은 없어도 노래에 대한 단원들의 열정과 애착은 대단하다. 매주 목요일 오후7시 연습시간에는 단원들이 집안 일이나 업무를 제쳐 놓고 대부분 참석할 정도. 오히려 상당수는 연습시간보다 1, 2시간 먼저 나와 악보를 살펴보고 발성연습을 하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주부 차혜실(43)씨는 "노래가 좋아 합창단에 들어왔으나 대원들과 얘기하다 그들의 고충을 알게 됐다"며 "서로 마음이 잘 맞기 때문에 3개월만 지나면 합창실력이 수준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원들은 화재예방을 위해 앞으로 소방안전 홍보사절단으로도 활동하게 된다. 지역내 사회복지시설을 돌며 위문공연하고 연말에는 정기 공연을 열어 수익금을 불우이웃에 기탁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단장을 맡고 있는 최소영(55)씨는 "문화 관련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부족한 부평지역에 행정기관과 주민이 참여하는 문화 행사, 문화 모임이 더욱 많아져 지역사회를 풍요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글·사진=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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