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팀' 대전 시티즌이 시즌 초반 3연승을 올리며 지난 시즌 챔프 성남에 이어 2위를 질주하고 있다. '경계 대상 1호팀'으로 돌변한 것이다. 대전의 이런 돌풍의 중심에 1월부터 지휘봉을 잡은 최윤겸(41) 감독이 있다는 데 그 누구도 물음표를 달지 않는다. 전날밤의 3연승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일 오전 대전 유성인터체인지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대전 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선수들과 호흡하고 있는 최 감독을 만나 그만의 축구 이야기를 들어봤다.축구는 재미있어야 한다
최 감독은 '재미있는 축구'를 지향한다. 경기를 할 때는 물론이고 체력 훈련을 할 때도 공을 갖고 한다. 최 감독은 "모든 상황을 공을 가지고 하도록 해 선수들을 자극하고 더욱 공격적으로 만든다"면서 "이러는 동안 선수들은 스스로 재미와 흥미를 느끼고 공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고 특유의 축구 지론을 설명했다.
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대전의 가장 큰 변화는 소극적인 수비형에서 적극적인 공격형으로 바뀐 것. "1―0으로 이기는 수비축구 보다는 0―1으로 지더라도 공격을 하도록 하죠. 선수들에게 항상 점수에서 지더라도 경기 내용에서 이기는 축구를 주문하고 있어요." 그래선지 요즘 운동장을 뛰는 선수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꽉 차있고 활기가 넘친다.
최 감독은 또한 개인기의 약점을 조직력 강화로 보완하고 있다. 수비할 때도 함께, 공격할 때도 11명 모두가 참여한다. 최 감독의 이러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 축구가 지난해 1승밖에 챙기지 못한 대전에게 벌써 3승째를 안겨주고 있는 비결이다.
새로운 인생에 도박을 걸다
지금은 활짝 웃고 있는 최 감독이지만 7개월전인 지난해 8월은 그의 인생에 있어 지워버리고 싶은 부분으로 남아 있다. 구단의 일방적인 경질 통보로 1년 4개월만에 부천SK 감독직에서 도중하차한 것. 지난해 9월1일 부천 홈구장에서 안양과의 고별전(1―1 무)을 가진 뒤 헹가래를 쳐주던 선수들을 언급하며 "이기지도 못하고 헹가래를 받은 감독은 내가 처음일 것"이라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최 감독은 네덜란드 유학길에 올랐다. 한창 재미도 붙이며 유럽선진축구에 빠져들던 지난해 말 고향팀이던 대전 시티즌에서 그에게 애절한 러브콜을 보냈다. 처음엔 반신반의였다. 한창 빠져있는 유학생활을 도중에 접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최 감독은 마침내 감독직을 받아들였다. 최 감독은 "고향팀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며 "솔직히 30년에 가까운 축구인생에 있어 가장 큰 도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대전이 전지훈련중인 터키로 날아가 팀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우선 패배의식에 빠져있던 선수들에게 자신감부터 불어넣었다. 그리고 10년간 지도자 생활을 통해 쌓았던 축구 철학과 네덜란드 유학길에서 습득한 선진 축구기술을 선수들에게 쏟아부었다. 특히 팀을 가족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선수들도 적극적이었다.
퇴출시킨 부천에 첫승
드디어 시즌 개막. 성남과의 개막전을 아쉽게 내준 최 감독은 공교롭게도 두번째 경기에서 자신을 퇴출시켰던 부천을 상대로 첫 승을 거뒀다. 최 감독은 "이기고 싶었다. 나를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하지만 고개를 떨구고 운동장을 나가는 선수들을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고 말하며 깊은 숨을 몰아 쉬었다.
최 감독은 과거는 잊었다고 말한다. 이젠 미래만 있을 뿐이라고. 최 감독은 올해 목표를 15승에 맞추고 있다. 12개 팀중 6∼7위 정도를 겨냥하고 있는 것. 최 감독은 "나는 마술을 하는 감독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 운동장에선 선수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며 "한 단계씩 끌어올려 더 이상 만만한 팀이 아니라는 점을 심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대전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당부한 뒤 "멋진 경기로 보답할테니 꼭 지켜봐달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유성=박희정기자 hjpark@hk.co.kr
● 프로필
―출생: 1962년 대전
―학력: 대전 신흥초-대전 체육중-홍주고-인천대·대학원(88년) 졸
―선수경력: 신흥초 5학년때 축구 시작, 부천 유공(85∼93년), 올림픽 대표(85∼88년·서울
올림픽 출전·센터하프)
―지도자경력: 부천 SK 트레이너(93년)·코치·감독(2001∼2002.9), 대전 시티즌 감독 (2003.1)
―가족: 이순영(39)씨와 2남
―주량: 소주 1병
―종교: 무
대전 시티즌이 '구단 이름만 빼고 다 바꿨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1997년 3월 창단된 대전은 지난해말 모기업이던 계룡건설이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대전 시티즌발전시민협의회로 경영주체가 바뀌었다.
김광식 전 대전시체육회사무처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 대전은 지역 향토 기업들과 시민들의 후원으로 구단을 꾸려가며 진정한 시민구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1월 사령탑을 최윤겸 감독으로 바꾼 대전은 이영익 전 현대미포조선 코치와 임기한 전 부천 코치를 영입하며 코칭 스태프를 전원 물갈이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최 감독의 의견을 구단측이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것.
선수들의 얼굴도 바뀌었다. 전남의 신진원과 김종현, 부천의 박 철, 현대미포조선의 주승진, 새내기 이무형을 영입하고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알렉스, 수비형 미드필더 호드리고 등을 1년간 임대, 외국인 용병을 3명으로 늘렸다.
가장 큰 변화는 선수들의 의식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패배 의식에 빠져있던 선수들은 '이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꽉 차있다. 또한 김은중, 이관우 등 대부분의 선수들이 올 시즌 연봉 협상에서 구단에 백지 위임할 정도로 자신을 희생할 각오도 돼 있다.
그러나 재정적인 부분은 여전히 대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연간 운영비가 65억원으로 타 구단의 절반도 안되지만 이도 여의치 않은 상황. 고정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즉흥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달에는 염홍철 대전시장 등이 은행에 개인담보를 제공하고 2억원을 대출, 선수들의 월급을 줬을 정도다.
하지만 대전 시민들의 응원이 대전을 버티게 하고 있는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3월말까지 시민들이 4억원의 연간회원권(성인 1명당 15만원)을 구입했으며, 특히 대전 경기를 찾는 시민들이 2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축구 열기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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