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4월7일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됐다.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은 정부로부터 신문사 창설비 3,000원, 주택 구입비 1,400원 해서 4,400원을 받아 이 신문을 창간했다. 그러니까 최초의 민간 신문은 정부 돈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창간 첫 해의 독립신문은 전체 네 면 가운데 세 면은 한글 전용의 '독립신문'으로, 마지막 한 면은 영문판 'The Independent'로 편집했다. 그러다가 창간 이듬해인 1897년 1월5일자부터 국문판과 영문판을 분리해 두 가지 신문을 발행했다.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 1883년 창간)가 한문만으로 편집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독립신문의 한글 전용은 일정한 민중지향성을 상징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독립신문은 신문의 계몽적 역할을 당대 사람들에게 일깨워, 그 뒤 민간신문이 잇따라 창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1957년 4월7일 독립신문 창간 61 돌을 맞아 이 날을 신문의 날로 정했다.
독립신문이 창간되고 107년이 지난 지금, 신문이 한국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 영향의 효과는 꽤 수상쩍다. 한국의 신문 시장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몇몇 극(極)보수 신문의 과점 상태에 놓여 있다. 경쟁은 기사 내용이나 편집 방향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력을 동원한 신문 외적(外的) 혜택을 통해 이뤄진다.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충분히 이뤄진 듯하다. 그러나 이 독립은 매우 얄궂은 방식으로 이뤄졌다. 언론 권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이제는 신문 자체가 넓은 의미의 정치 권력이 돼버린 것이다. 오늘날 몇몇 거대 신문들은 전통적 의미의 공론장(公論場)이라기보다, 특권 계급과 연결된 특정 정파의 기획실 겸 선전국이 되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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