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장한나, 홍혜경, 조수미, 정 트리오, 백남준….' 이 이름들을 거론하면 더 이상 미국 문화예술계에서 한인들의 위상을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미국 주류 사회 진입에 성공한 한인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분야로 예술 분야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 문화는 이민자들의 힘을 재는 저울이라는 점에서 문화계 인사들의 성공은 한인 사회의 자부심이자 성공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다.1970년대 초부터 미국과 세계 무대에 한인 음악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시작한 1세대는 정명화(59), 정경화(55), 정명훈(50) 3남매로 구성된'정 트리오'다. '20세기 세계 3대 소프라노'로까지 불리는 홍혜경(46), 조수미(40), 신영옥(42)씨는 모두 10여년 째 세계 정상을 구가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23)씨와 첼리스트 장한나(20)씨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신동에서 이제 성숙미가 풍기는 연주자로 자리 잡았다. 뉴욕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25년째 재직 중인 강 효(58·바이올린) 교수가 이끄는 '세종 솔로이스츠'는 유일하게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한국계 실내 악단이다. 미국 아스펜 국제음악제 상임 실내악단 지정(97년), 세계적 매니지먼트사인 ICM과의 전속 계약(98년) 등 세종의 급성장은 미국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음악계의 기대주로는 첼리스트 다니엘 리(22·한국명 이상화)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18)양이 꼽힌다. 이씨는 좀처럼 제자를 받지 않는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가 제자로 삼기 위해 직접 편지를 쓴 일화로도 유명하다. 2001년엔 미국 음악계가 다음 세대를 짊어질 연주자에게 수여하는 '보증수표'격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거머쥐었다. 이 양은 5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뒤 다음 해 한국일보 콩쿨에서 우승, '또 하나의 신동'으로 화제를 모았다. 9살 때인 94년 줄리어드로 유학해 1년만에 ICM과 최연소 계약을 맺었고, 볼티모어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미국 유명 교향악단과 협연했다.
재미 한인 음악인들은 "본게임은 이제부터"라고 말한다. 줄리어드 학부 과정 정원 600명 중 100여 명이 한국인이고, 대학 준비반(pre-college)은 한국인이 3분의 1이 넘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같은 자신감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미술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정 받는 비디오·레이저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71)씨와 설치 미술가 강익중(43)씨가 대표적이다. 피카소, 모네 등과 같은 반열로 추앙 받는 백씨는 8년 전 뇌일혈로 몸이 불편하지만 2001년 뉴욕 구겐하임 전시회,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 기념 퍼포먼스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설치 미술 분야의 데이비드 정(44·조지 메이슨대) 교수와 김홍자(몽고메리대) 교수, 문범강(조지타운대) 교수 등도 참신한 자기 세계 구축에 성공, 세계 미술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신예 미술가 고상우(27)씨는 2001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졸업할 때 시카고의 '칼 햄머 갤러리'가 그의 작품전을 유치하면서 단번에 미술계의 스타로 떠오른 인물. 수십 명의 A급 유명 작가를 거느린 칼 햄머가 대학을 갓 졸업한 동양인을 스스로 '모신'경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음악 분야에 비해 미술 분야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평가이다. 미국 미술계를 사실상 쥐락펴락하는 유대인들이 한국계 미술가의 작품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주류 시장에 선을 보이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미술 마케팅 분야의 한인 파워가 미약한 것은 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뉴욕=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실내악단 세종 솔로이스츠 뭉쳐서 벽 넘은 모범사례
"스타는 있지만 파워는 없다."
미국 예술계에서 한인 예술가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뛰어난 재능으로 주류에 들어가는 예술인들이 늘고 있지만, 개인적 성공에 그칠 뿐 '무리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 지망생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숫자에 비하면 활약상은 부진한 편이다. 한인 예술계 인사들은 "이런 식으로는 제2의 장영주가 10 명 나와도 달라질 게 없다"고 지적했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한국계 현악 실내악단 '세종 솔로이스츠(International Sejong Soloists·이하 세종)'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의 강 효(58·바이올린) 교수는 1995년 "한국 음악가가 세계적 음악가로 성장하도록 돕자"는 취지로 한국계 제자들을 모아 세종을 창단했다. '세종'이라는 이름은 한국 문화의 꽃을 피우고 인류애를 실현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세계인과 나눈다는 취지에서 선택했다. 강 교수는 세종의 성공 요인과 재미 한국 예술계가 나아갈 방향을 세 가지로 짚었다.
첫째는 무리짓기를 통한 힘 기르기다. 흩어져 있는 예술인들이 각개격파 식으로 인종 차별 등에 맞서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주류'의 주목을 끌고, 효과적으로 신예를 발굴해 지원하며, 개인이 정서적 안정을 느껴 예술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세종은 단시간에 무명의 설움을 극복하고, 송영훈 김상진 김현아 허윤정 등 미국 음악계가 주목하는'무서운 아이들'을 배출했다.
둘째 강 교수는 무리의 폐쇄성을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한국인의 특성인 '끼리끼리 주의'에 빠지면 다른 예술인들과 교류해 발전할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세종은 그래서 어느 정도 실력과 지명도를 갖춘 뒤 다른 나라 출신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적극 받아들였다. 현재는 미국 호주 일본 대만 등 9개 국 출신이 전체 단원(20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 중에는 세계 굴지의 국제대회 우승자들과 예일대, 버팔로대 등의 교수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는 한국 문화와의 접목을 시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한국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믿고 있다. 강 교수는 "한국 가곡과 작곡가를 소개하는 것 외에 수년 째 국악과의 접목을 연구 중"이라며 "상품성과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뉴욕=최문선기자
■ 소프라노 홍혜경 "인종 열등감 먼저 벗어야"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왜 콤플렉스로 느껴야 하나'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진 뒤부터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에서 18년 동안 부동의 프리마돈나(오페라의 여주인공)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홍혜경(46·사진)씨가 밝힌 성공 비결이다. "무대에 설 때만큼은 키가 작고 눈이 양 옆으로 찢어진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어요. 온전히 투란도트(오페라 투란도트의 주인공)나 미미(라보엠의 주인공)가 되기 위해서였죠."
홍씨는 예원여중 재학 시절인 30년 전 뉴욕으로 유학, 1982년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면서 단번에 미국 음악계의 주류로 등장했다. 2년 뒤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메트 무대에 진출한 그는 올 1월 유럽 최고의 오페라 무대인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 오르는 등 여전히 세계 정상에 서있다.
물론 홍씨도 여느 유학생이나 이민자처럼 백인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혔다. 성악이 서양 문화이고, 오페라 무대에서 서양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가 겪은 벽은 좀 더 두껍고 단단했다.
때때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의 스승들은 "혜경이는 동양인이라 두개골이 커서 음성의 공명이 잘 되고, 목소리가 곱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라. 노력해서 관객들이 네 피부색을 인식하지 못하는 '색맹'이 되게 하라 "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한국말은 일절 하지 않고 그 좋아하는 김치 한 조각 먹지 않았어요. 예술과 성공을 위해 나를 희생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죠."
홍씨는 장영주, 장한나 등 '한국의 딸'들이 예술가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유로 "불타는 성취욕과 열정적 훈련"을 꼽았다. 그는 하지만 "재능 있는 1.5세와 2세나 한국 유학생들이 인종적 열등감에 젖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13∼17일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와 함께 '선구자''금강산'등 애창 한국 가곡 18곡을 녹음할 예정이다. 메이저 음반사(EMI)에서 한 앨범 전체를 한국 가곡으로만 꾸미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월18일 내한 독창회를 준비 중인 홍씨는 방한 중에 꼭 금강산에 가보고 싶다며 "은퇴하면 한국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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