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심모(36)씨는 지난해초 북한산에 오르다 호흡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병원에 가서 진단 받은 결과는 '천식'. 이후 지금껏 천식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심씨는 "알레르기성 체질도 아니고 몸도 건강했는데 기가 막힌다"며 "자동차 공해가 심한 서울 한 복판에서 10여년째 근무한 탓이 아니겠냐"며 씁쓸해 했다. 택시운전사로 일하던 김모(45)씨는 최근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천식을 앓았던 김씨는 자동차 운전 도중 갑자기 숨이 막히는 호흡 곤란을 느껴 밤중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김씨는 "자동차 매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운전을 못할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수도권 지역의 대기오염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시민들의 건강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2005년부터 경유승용차가 허용됨에 따라 가뜩이나 나쁜 수도권 대기질의 급속한 악화가 예상되자 환경단체들이 국가와 자동차 제조사 등을 상대로 대기오염에 따른 피해에 대해 집단 손해배상 소송까지 준비중이다.호흡기 질환 환자·사망자 증가
4일 이화여대 목동 병원. 천식 등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만 이날 하루 줄잡아 40여명. 초등학생 아이가 천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송윤옥(38)씨는 "아이가 공기가 탁한 날이면 기침이 더 심해진다"며 "아이 때문이라도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대한 소아알레르기 및 호흡기 학회가 200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처럼 소아 천식을 앓고 있는 환자가 전국 초·중학생의 12%에 이르며 1995년도 조사(9.5%)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호흡기 질환의 유발요인은 체질적 요인 등으로 다양하지만, 이중 미세먼지나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이 뚜렷한 악화 요인으로 꼽힌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사망률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임종한 인하대 교수, 권호장 단국대 교수 등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기중 미세먼지 농도가 100㎍/㎥ 높아질 때마다 하루에 사망자가 2∼3% 증가했다. 신동천 연세대 교수는 서울의 미세먼지로 인한 급성사망자가 연간 1,053명 정도라고 추정한 바 있다. 하은희 이화여대 교수는 대기오염이 악화하면 영아사망률이 9%까지 증가하고, 저체중아도 4∼8%까지 늘어난다고 보고했다.
경유차로 대기오염 증가
대기오염물질 중 호흡기 질환의 최대 적은 미세먼지다. 지름10㎛의 작은 알갱이로 폐 깊숙이까지 침투, 폐 손상은 물론 심장질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서울의 미세먼지는 76㎍/㎥로 OECD 국가중 최고 수준. 서왕진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총 미세먼지의 33.6%가 자동차에서 배출되며 이는 모두 경유차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경유승용차마저 대책 없이 허용되면 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환경부는 경유승용차가 2005년 허용되면, 낮은 경유가격때문에 2012년에는 휘발유 차량의 70% 가량이 경유승용차로 넘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대기오염 악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집단손해배상 소송
사정이 이렇게 되자 녹색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등 환경운동단체들은 정부와 자동차 제조사, 공단 등을 상대로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피해에 대해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중이다.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 박오순 소장은 "자동차 공해 등으로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이 증가하고 있지만 책임지는 기관이 없다"며 "일본에서 대기오염 소송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는 만큼 대기오염 소송을 통해 자동차 공해에 제동을 걸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대기오염과 건강에 대한 연구가 1990년대 후반에서야 시작됐을 정도로 아직은 초보적 단계. 박 소장은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됐지만, 피해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 설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역학조사 등 기초자료 수집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대기오염 피해보상 사례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다른 환경소송과 달리 인과 관계를 명확히 입증하기 힘들어 소송이 어렵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수많은 재판투쟁을 통해 상당한 진척을 보고 있다.
그 선구는 1972년 첫 승리를 거둔 '요카이치 공해재판'이었다. 1950년대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선 이후 60년대부터 미에(三重)현 요카이치(四日)시에 천식 환자들이 급증했던 것. 일명 '요카이치 천식'이란 이름이 생길 정도로 호흡곤란, 천식 등의 피해가 커지자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돼 법적 소송까지 이어졌다.
주민 9명이 공단 입주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결국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한 것이 기폭제가 돼 다른 소송 사건으로 확산됐고, 73년에는 공해건강피해보상법까지 제정됐다.
지금까지 요카이치시에서 피해보상을 받은 사람만 1,738명에 이르고 현재도 500여명이 등록돼 연간 15억엔의 보상비를 받고 있다. 또 일본 전체로는 16만명의 피해자에게 연간 750억엔이 지출되며 이 기금의 대부분을 기업이 부담하고 있다.
한면희 환경정의연구소장은 "해당 지역 대기오염의 원인물질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리고 환자의 병이 이 물질로 인한 것인지를 입증하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역학조사도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 승소까지는 힘들게 사실이다"면서 "하지만 요카이치 공해 재판은 대기오염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 수도권 대기오염 현황
서울의 미세먼지 수준이 2001년 기준 71㎍/㎥로 OECD 국가의 주요 도시 중 최악이라는 최근 환경부의 발표대로 수도권의 대기수준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은 계속 악화하고 있는 추세. 서울의 미세먼지 수준이 OECD 국가 중 최악이라는 것도 모자라는 듯, 지난해에는 더 늘어 76㎍/㎥까지 오른 상태. 미세먼지의 환경기준(150㎍/㎥) 초과횟수는 지난해 서울 367회 등 수도권이 977회로 비수도권(643회)에 비해 배 가까이 이르고 있다.
서울의 이산화질소 농도도 지난해 0.036ppm으로 1995년(0.032ppm)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에 발령되는 오존주의보는 지난해 43회가 발령돼 2001년보다 19회가 더 늘었다. 대기오염으로 인해 서울의 시정은 2000년 기준으로 10.9㎞로 울산(16㎞) 대구(13.9㎞) 등에 비해 20∼40%가 더 짧다.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량으로 따지면, 2000년 기준으로 수도권이 전국 질소산화물 배출량의 31%, 미세먼지 배출량의 19.2%, 휘발성유기화합물의 22.4%, 일산화탄소의 42.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지난해 수도권 지역의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간 10조 3,033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수도권 지역의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농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은 경유 차량의 급증 때문이다. 차량 중 미세먼지는 경유차에서만 나오며, 질소산화물도 경유차가 휘발유 차량의 80% 이상을 더 내뿜는 상황이다. 99년 15만 8,000대 팔렸던 경유RV차가 지난해에는 40만8,000천대가 팔려 전체 승용차 차량 판매 중 42%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유승용차까지 허용되자 대기오염 비상이 걸린 것이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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