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동안 8차례에 걸친 단체 교섭, 매주 서너번의 술자리를 통한 의견 수렴, 각종 경조사 참석과 야유회 체육대회 준비….6일 법원으로부터 업무상 재해 판정을 받은 이모(40)씨의 일상은 IMF 구제금융사태가 노조간부의 육체와 정신에 안겨준 신산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알루미늄 주조공으로 1986년 D사에 입사한 이씨는 93년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전임근무를 시작했다. 이씨는 조합원들과의 늦은 술자리는 물론 노사교섭을 위한 각종 협약안 마련 등 조합일에 열성을 다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노사양측을 잘 아우르는 합리적 교섭자세를 견지해 97년까지는 큰 노사마찰이 없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98년 환란이 터지자 회사측은 노조에 '상여금 반납, 희망퇴직, 휴업 실시, 조합활동 축소, 공휴일 축소'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이씨는 파업으로 맞서는 한편 조합원을 설득해 30여명을 희망퇴직시키는 등 협상안을 타결시켰다.
99년에도 임금 동결을 요구하는 회사측에 맞서 기본급을 월 3만9,000∼4만5,000원 인상하는데 합의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불만으로 합의안이 총회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터지면서 이씨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조합원들이 이씨를 위원장으로 재신임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반노조적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이씨는 또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양측으로부터 백안시당하는 분위기에서 속을 끓이던 이씨는 결국 척수염에 걸리는 등 건강이 악화하고 말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신청을 했지만 "전임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한 사람이 아니다"며 거부, 다시 한번 좌절해야 했다.
법원에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 이씨에게 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정태학 판사는 "노조전임업무를 회사 업무로 인정하지 않은 공단 측 입장은 위법이며, 노조위원장 취임 후 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화해 발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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