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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순한 눈의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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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순한 눈의 "그 사람들"

입력
2003.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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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캄보디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방콕, 프놈펜을 거쳐 시앰립으로 들어갔던 것은 천년도 넘게 밀림에 뒤덮여 있었다는 앙코르 사원들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때 보았던 사원들에 대해서 여기에 적고 싶은 생각은 없다.시앰립에서 묵었던 그 며칠의 정경들은 내 마음에 너무 간곡히 들러 붙어버린 모양으로 몇 년이 지났는데도 거리감이 생기질 않아 여태 제대로 된 문장으로 풀려 나와본 적이 없다.

우리가 그 도시에 도착한 것은 밤 시간이었다. 수화물을 공항직원들이 손수 나르는 것을 나는 물끄러미 구경했다. 우리를 태운 봉고차가 공항을 빠져 나오자 칠흑 같은 어둠이 시작되었다.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는데도 그랬다. 평일에는 가로등을 켜지 않는다고 했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는 날이 있는데 그날은 국왕의 생일날이라고 했다. 멀리서 휘황하게 반짝이는 불빛들은 대개가 호텔이 있는 곳이었다. 거리에 가로등도 켜지 않는 나라에 와서 에어콘이 잘된 호텔에 묵고 있으려니 어찌 그리 기이한 느낌이던지.

그런 날 중의 어느 하루.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20여㎞ 떨어진 반테스레이 사원을 향해 길을 떠나게 되었다. 역시 그 사원에 대해 쓰려는 게 아니다. 거기로 가는 도중 내내 나는 차창바깥의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 맞을까, 싶도록 황폐한 땅이 한없이 이어졌다.

이따금 집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는데 집이라고 해봐야 그냥 높다란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거적을 깔아놓은 게 다였다. 필립 로오드가 쓴 대로 전화선도 없고, 전기줄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전차도 없고, 잔디깎이 기계도 없고, 창문도 없고, 소파도 없고, 안락의자도 없고, 건조기도 없고, 전기 열탕기도 없고, 핑퐁대도 없고, 골프 카트도 없었다.

있는 것은 우기와 건기 태양 그리고 수평선 없는 물 뿐인 듯했다. 아니, 마당에는 야윈 돼지들이 있었다. 야윈 닭들이 마른 먼지가 풀풀대는 흙을 헤집고 있었다. 그렇게 야윈 돼지나 닭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저게 돼지구나 라고 인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새가 앉아있나 싶어 다시 보면 닭이었다.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태양과 먼지가 뒤섞인 길가에 상점이 나타났는데 평상 같은 걸 깔아놓고 물건을 쭉 나열해 놓은 게 고작이었다. 그 사람들 역시 뼈에 도배를 해놓은 것처럼 야위어 있었다. 그런 모습이 끝없이 이어졌다.

탈탈거리는 봉고차 안에서 바깥을 응시(아니 그보다는 목격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했다. 그러다가 보게 된 풍경. 아마 홍수에 다리가 유실된 모양인데 정부에서 손을 써주지 않으니 마을 사람들이 공력을 모아 나무 다리를 놓은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그 다리를 지나야 했다. 마을 사람이 다리 앞에 서서 볕에 타 그을리고 야윈 손을 내밀었다. 그 다리를 지나려면 요금을 내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주면 받고 안주면 안받는 거였다.

나는 그때야 그곳 사람들의 눈을 쳐다봤다. 세상에 어찌 그리 순한 눈이 있단 말인가. 그곳을 지난 후부터 나는 현지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의 눈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유실된 길을 복구한다고 방이나 쓸면 알맞을 것 같은 빗자루로 하염없이 길의 먼지를 쓸고 있는 사람들, 웃옷에 돌을 담아 나르는 사람들, 꾀죄죄한 물건을 사라고 나를 쳐다보는 더는 야윌 수 없이 야윈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눈은 너무나 평화롭고 순했다. 그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힌다 했다. 지독한 역사와 가난과 불행 앞에서 어떻게 그런 눈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지난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그 황폐한 땅에 폭격을 가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 있을 때 불현듯 그들의 그 눈빛들이 스쳐 지나가더니 요즘 이라크 어린이들이 폭격에 맞아 온몸에 화상을 입고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위로 또 그들의 눈빛이 겹치는 건 어인 일인지.

신 경 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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