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알 수 없음·주왕기 옮김 박영률출판사 발행·9,800원7월10일 재미있었어. 황홀했어. 영광스럽기조차 했어. 그렇지만 다신 그러지 않으려고 생각해. 난 약물에 대해서 무서운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 7월13일 하지만 너무도 너무도 호기심이 나서 약물을 시험해보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 딱 한 번만이야. 7월20일 이제 난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한번 해보지 않고는 못 참겠어. 7월23일 왜 약물을 사용해서는 안되는지 모르겠어. 약물은 자극적이고 아름답고 멋지거든. 그러나 약물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어. 8월3일 이번엔 다른 때보다도 굉장했어. 근육과 세포와 공기구멍이 보였어. 혈관 속속들이 황홀경을 맛보았어. 11월5일 잊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매일 같이 집 생각이 간절해져. 썩어빠진 냄새가 나는 이 모든 곤경의 장본인은 바로 다름아닌 약물이야. 약물을 알지 못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1월24일 한번 약물을 경험하면 약물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지… 다시 약물을 복용하게 되어서 기뻐, 기쁘단 말야! 이듬해 7월 어느날 의사들은 내가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어. 눈을 감으면 벌레들이 내 몸을 기어다니고 있는 게 보여. 벌레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어. 내 콧구멍 속을 기어다니고 내 입 속을 뜯어먹고… 오, 하느님.
'앨리스의 일기'는 9월 16일에 시작됐다. 그리고 2년 뒤 9월 21일에 끝났다. 앨리스는 다시는 일기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3주일 만에 죽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부모가 딸의 방문을 열어보니 죽어 있었다. 경찰을 부르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불의의 사고였는지, 미리 계획된 과다 복용 사망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앨리스는 그해 미국에서 사망한 수천 명의 약물 사용자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이 책은 열여섯 살 약물 복용자가 직접 쓴 것이다. 저자 앨리스는 가명이고, 관계자들의 요청에 따라 날짜와 장소도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소녀가 서서히 마약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빠져들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은 섬뜩하다.
한국약물남용연구소 소장인 번역자 주왕기씨는 "마약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없다. 그냥 이 한 권의 책으로 족하다"고 평한다.
실제로 '앨리스의 일기'는 1971년 출간 당시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400만부 이상 팔렸으며, 지금까지도 인터넷 서점 아마존과 반스&노블 등에 독자 리뷰가 투고될 정도로 지속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독자들의 반응은 이 한 권의 일기가 얼마나 크고 오랜 울림을 갖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두렵고 공포스러운 울림이다. "이 책은 한 번도 내 머리 속을 떠난 적이 없다. 사람들이 입에서 치약 냄새를 풍기며 코카인으로 죽어갈 때마다 앨리스를 떠올렸다. 나는 계속해서 '노'라고 말할 수 있었다."(아마존 리뷰, 텍사스의 한 독자) "나 역시 아주 어린 나이에 마약에 빠졌다. 몇 달 전 내가 최악의 상태가 되었을 때 난 노숙자였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했다. 나는 재활센터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마약을 끊은 지 41일 째다. 내가 문제가 있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반스&노블 리뷰, 마약 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20대 독자)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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