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이라크 국민의 해방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미국의 '본심'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단초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전쟁 승리가 눈앞에 다가오자 미국은 이번 전쟁에 반대했던 프랑스 등이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한편 이라크 석유 관리를 독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전후 복구사업 독점
미국 하원은 3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가운데 전쟁에 반대했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 시리아 등이 미국 자금으로 이뤄지는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국을 이라크 재건 사업 참여 금지국에 포함시키는 수정안은 부결됐다.
마크 케네디(미네소타주·공화) 의원이 발의한 이 수정 예산안이 통과됨에 따라 이들 4개 국은 이라크 재건 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케네디 수정안은 이라크 전비로 779억 달러를 추가 예산에 반영하고 이라크 재건 사업을 시작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안을 통과시킨 진의는 "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이뤄지는 이라크 재건 사업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네더컷 의원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피를 같이 흘리지 않은 국가에게는 전리품을 나눠줄 수 없다는 얘기다. 관측통들은 이라크 전후처리를 유엔 중심으로 진행하자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측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라크 원유 관리
미국은 또 전후 이라크 석유를 관리하면서 석유 판매수입으로 이라크를 재건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이날 보도했다. 점령군으로서 당연히 이라크 국민의 이익을 위해 석유를 판매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게 미국의 논리다.
이와 관련, 미국의 기업들이 이라크 석유 계약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 국무부는 전후 이라크 석유 부문 재건 업무를 필립 캐럴 전 로열 더치 셸 회장에게 맡아주도록 요청했다고 AP통신이 4일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필립 캐럴이 전후 이라크 석유 관리자의 유력한 후보라고 전했다. 필립 캐럴은 전후 이라크 재건 사업에 입찰한 미국 건설사인 플루어사의 회장직을 지난해 물러났다.
반면 국제사회는 미국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마크 몰러치 브라운 사무총장은 3일 "국제법에 따르면 전후 이라크에 들어설 미국 주도의 행정부가 미국 기업들에게 이라크의 석유 산업 현대화 및 운영권 계약을 발주할 권한은 없다"고 밝혔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이날 "이라크의 석유와 천연 자원은 반드시 이라크 국민의 소유여야 하고, 이라크 국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과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도 "미국이 유엔의 새로운 결의 없이는 잠정적이라 하더라도 석유를 수출할 법적 권리가 없다"며 "유엔이 이라크 석유를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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