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정보의 교환과 과도한 자극으로 우리 지성의 변별력은 둔화하고 급기야 미개한 수준의 마비 상태로 빠지고 있다." 전쟁의 이미지로 점철된 요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는 듯한 이 문구는 놀랍게도 사진이 발명되기 전인 1800년 영국 시인 워즈워드가 한 말이다. 수잔 손탁은 지난해 2월 낸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Regarding the Pain of Others·파라 스트라우스& 지로 발행)에서 워즈워드로부터 스페인 화가 고야가 고발한 전쟁의 참상, 로버트 카파가 사진으로 기록한 스페인 내란, 9·11 테러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참사를 재현한 이미지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그리고 거기서 실제의 참담한 현실과, 사진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간극을 고민한다. 지금 미국에서는 이라크 전쟁 사진이 연일 신문의 1면을 차지하고 있다. 1991년 걸프전 때 CNN 방송이 유일한 케이블 뉴스였다면 지금은 FOX, MSNBC 등 여러 방송 채널이 쉬지 않고 전쟁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폭주하는 이미지와 정보 속에서 우리의 현실을 점검하는 기회를 주는 이 책의 출판은 시기적으로 의미가 크다.
여기에 덧붙여 눈길을 끄는 것은 저자가 손탁이라는 점이다. '신지식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는 미국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친 문화평론가이자 소설가이다. 그러나 그의 지성은 비단 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베트남 전쟁 때는 하노이를 방문했고, 93년 전쟁 중이던 사라예보에서 새뮤얼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아왔다.
9·11 테러 직후 쓴 글에서 그는 "겁쟁이는 그들이 아니다"며 강한 목소리로 미국민의 역사적 자각을 촉구했지만 절정에 이른 애국 분위기 속에서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진에 관하여'(1977년)에서 이미 자신의 사진론을 피력한 적이 있기에 이번 책은 더욱 관심을 끈다. 흥미롭게도 그는 새 책에서 전에 밝혔던 의견, 즉 사진이 없던 시기보다 오늘날 사진을 통해 확대된 현실의 인식은 보다 실제에 가깝다는 생각에 과연 그런가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현실이 '볼거리'로 되는 상황은 끔찍한 지역 이기주의의 산물이며, 뉴스가 오락으로 전락하는 세상에는 의자에 앉아 남의 고통을 감상하는 관람자만 있을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9·11 테러 이후 한 인터뷰에서 손탁은 "사망자 명단을 보며 아침마다 울었다"고 했다. 그의 책에서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한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안타까운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박 상 미 재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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