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이 남자는 팔자가 늘어진 것 같다. 낮에는 광고·이벤트 기획사 사장, 밤에는 라이브 카페의 가수 겸 사장. "음, 좀 끓여 먹고 사는 집 아들이겠지, 아니면 기획사가 잘되니 심심파적으로 차렸겠지. 그것도 아니면 결혼을 잘했나?" 이렇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박현수(42)씨의 삶을 들여다 보면 이런 예상은 대부분 어긋난다.고군분투 박사장
박현수씨는 광고와 이벤트를 기획하는 무아기획의 대표이자 절전 기능을 가진 전기 탭을 만드는 잉카 솔루션의 이사이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쓴 맛을 적잖게 맛보았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방송사 다큐 PD가 됐다가 "뭔가 내 일이 하고 싶어" 5년 만에 그만뒀다. 잘 나가는 광고 기획사를 차렸다가 망한 적도 있고, 건대 앞에 라이브 카페를 차렸다가 불이 나 주저앉기도 했다. 의정부 YMCA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척박한 지방 소도시의 문화를 일구는 일도 했다. 사업 실패로 빚을 져 주위에 신세도 많이 졌다. 재작년 말 장인이, 지난해에는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주말이면 아내는 장인이 입원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자신은 어머니가 누워 있는 중앙대 부속병원에서 밤을 새운다. 돈이 필요했다. '돈 되는 건 뭐든 다한다'는 그이지만 실제로는 '돈 되는 데도 안 하는 일'이 많은 그이다. 라이브 카페를 두고 "몇 억원을 줄 테니 팔라"는 사람들의 유혹을 뿌리친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그는 혼자서 다 어찌 할까 싶은 일을 해 내고 있다. 그는 요즘 5월에 열리는 대한당뇨협회와 대한당뇨병학회 주최 당뇨건강걷기대회 행사를 수주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회자 및 주요 게스트 섭외 및 홍보, 부대 행사·포스터 기획 등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용가 이애주씨의 매니저도 맡고 있어 전남 승주 선암사에서 열릴 승무 공양을 준비해야 하고, 가수 임지훈 콘서트도 기획하고 있다.
이벤트 사업이란 게 한 건 있으면 열너댓 업체가 몰려드는 업종이다. 그런데도 그는 접대는 하지 않는다. 업무 시간 외에 만나야 하면 라이브 카페에서 만나고 그것도 12시 이전에는 술을 안 마시니 그에게 술 대접을 받기란 쉽지 않다.
고진감래 박사장
"그런데 재미있는 게 말이죠. 카페를 운영하는 '정신'을 고객들이 인정해 주는 것 같아요. 아마 내가 돈 때문에 카페를 팔아 버렸다면 이런 도움을 얻을 수 없었겠죠." 새벽 1시는 돼야 귀가하는 그를 생각해 고객들은 주로 오후에 만나자고 한다. 당뇨학회의 이벤트 때문에 새벽 6시에 의사 선생님들과 조찬 모임을 갖기도 하지만. 이벤트 PD였던 아내와 만난 것은 8년 전. "지난해에는 아이를 가져볼까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덜컥 장인과 어머니가 쓰러지고 나니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 어려운 일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도 그의 성격이다.
고집불통 박사장
기껏해야 5평은 될까? 라이브 카페 '무아'의 벽과 천장은 한 번이라도 들렀던 사람들의 사진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서울 명동성동 맞은 편 명동의 끝자락에 위치한 '무아'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드나든다. 포크가수 은행원 신부님 스님 영화배우 공무원 언론인 등…. 그 만큼 사연도 많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 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사연이 하나씩 떠올라요." 그래서 누군가는 '무아'를 '삭막한 도시의 등대' 라고 했다.
"IMF 때는 해고된 사진 속의 동료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글썽이던 회사원들이 있었죠. 또 언젠가는 '너무 노래가 듣고 싶어서 돈을 모아 왔다'는 노숙자 손님도 있었어요. 혼자 조용히 노래를 듣다가 나가더라고요. 돈을 받지 않겠다는데도 굳이 꼬깃꼬깃 구겨진 돈을 내고 가더군요."
무아에서는 누구나 노래할 수 있다. 하지만 술 취해서 노래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술주정도 금지돼 있다. "무아는 술집이 아니에요. 처음 2∼3년간은 매일 밤 손님들하고 싸우는 게 일이었죠. 노래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술만 들이 붓고, 주정 부리는 사람은 '당장 나가라'며 쫓아냈어요. 그리고 1년간 출입 정지를 시키죠. 그래서 한때 '무아에서는 양주 3병 먹고도 깽판 부리면 돈 안 받는다'는 소문이 났죠." 하지만 그렇게 쫓겨난 이들도 무아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다. "머쓱한 표정으로 찾아 와서는 '다시는 술 먹고 주정하지 않겠다며 1년 지났으니 다시 오게 해달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너그럽게 다시 받아주죠." 누구는 술 팔아야 돈 버는 거 아니냐고 한다. "돈 벌기로 마음 먹었으면 이거 안 차렸죠. 매상이 많이 오르는 날은 100만원도 벌지만 낮에 벌어 밤에 다 쓰는 격입니다."
부창부수 박가수
얼마 전 성대 수술을 받았다. 목을 많이 써서 생기는, 가수들에게 흔한 병이다. "대학교 때는 학생 신분을 숨기고 통기타 카페에서 노래도 많이 했어요. 명동이 지금은 분식집, 화장품집,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지만 70년대는 통기타 문화의 중심지였어요. 여기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죠." "잘 부른다기 보다는 심금을 울린다는 사람이 많다"는 말로 자신의 노래를 평하는 그지만 수술 후 목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요즘 들어 부인 김기옥(35)씨가 노래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가 부인을 부르는 호칭은 '그대'. 박씨가 청한다. "그대여 노래 한 곡 불러 주시죠." 박씨의 기타 반주에 맞춰 아내가 동요 '과꽃'을 부르자 박씨가 손님들의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랑이 철철 넘치는 멘트를 날린다. "아휴, 우리 색시 귀여워라."
유유자적 박현수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인터뷰 하기 싫다"였다. 남보기에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고,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던 일 가운데 제대로 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효녀 가수 누구'라는 말이 공연한 꾸밈말이 아님을 어머니가 몸져 누우신 후 알게 됐다. 실패도 적잖았던 만큼 그 사이 사람들에게 유형무형으로 진 빚도 남아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참 여유 있고, 행복해 보인다. "이런 처지에 행복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지만, 이런 삶이 만족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실패도 있었고, 여전히 힘겨운 나날이지만 그가 행복한 것은 그런 가운데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멋진 자연 다큐멘터리도 한 편 찍고 싶었는데…. 이젠 내 삶을 그냥 자연 다큐로 만들고 싶다." 일상의 번민을 떠나 그는 수시로 날아 간다. 노래라는 날개를 달고 새가 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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