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개의 전장 승리'(Win& Win)론은 1990년대 전반 클린턴 행정부시절에 확립된 해외 분쟁 개입 전략이다. 한반도와 중동지역에서 동시에 분쟁이 발발하더라도 두 지역에 모두 군사력을 파견, 승리를 거둔다는 내용이다. 이 전략은 국방예산감축과 군 구조 개혁 프로그램에 따라 '스윙'(Swing·한 전장에서 승리한 뒤 다른 전장에 개입)을 거쳐 '원 플러스'(One Plus·한 전장에서 전쟁이 수행하는 동안 다른 지역의 분쟁 발생 억제)로 수정판이 거듭되고 있다.미국은 지금 이런 맥락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2개 전장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제1 전장은 이라크 전쟁이고 제2 전장은 세계 반전여론과의 싸움이다. 미국은 과연 이 두개의 전장을 모두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제1 전장인 이라크전쟁에서 미영 연합군이 저항에 부딪히고 있지만 결국은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게릴라전과 자살공격으로 맞서는 이라크의 초반 저항이 강력하지만 압도적으로 군사력이 우세한 미영 연합군을 당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이라크군의 패퇴가 곧 미영 연합군의 승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은 이라크 국민을 사담 후세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민주정부를 건설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들은 좀처럼 연합군을 해방군으로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다. 이라크 내부 반란 기대는 미국의 순진한 계산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 살상이 급증하고 병원까지 폭격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라크인들의 대미 증오심은 높아만 가고 있다. 연합군의 구호품을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다가도 돌아서서 후세인 지지를 외치는 이라크 사람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미국은 이라크전 승리와 후세인 제거를 중동의 새 질서 구축 발판으로 삼는다지만 이 역시 환상일 가능성이 높다. 아랍세계의 반미감정이 이번 전쟁을 통해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미 성전에 참전하려는 아랍 청년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음이 이를 반증한다. 후세인이 끝까지 저항하다 장렬히 옥쇄하면 이라크인과 아랍세계의 저항의지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강행한 이유가 무의미해진다. 이라크인들의 증오심과 저항의지를 꺾지 못하면 미국은 결국 이라크전에서 승리했다고 할 수 없다. 포도송이처럼 영근 증오심이 강력한 테러에너지로 바뀌어 미국에 집속탄처럼 날아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후에도 테러의 충격과 공포는 여전히 미국인들의 몫이다.
제2 전장인 세계반전 여론과의 싸움은 어떤가. 유엔의 결의를 얻지 못하고 거센 반전 여론을 거슬러 전쟁을 강행했을 때 세계여론과의 싸움에서 미국은 진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이라크에서 대량살상 무기의 증거들을 찾아내면 세계의 여론이 돌아설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전 후 지구촌 곳곳의 반전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민간인의 피해가 급증하면서 반전여론은 미국에 대한 증오로 바뀌고 있다. 그로 인한 미국의 이미지 실추를 돈으로 환산하면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이라크 전비에 못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우방의 지도자들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을 지원해야 하는 우방국의 정치지도자들이 국내에서 심각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이 후유증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할 개연성이 높다.
냉전해체 후 세계 유일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이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나머지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시시각각으로 이라크 전황을 접하면서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 계 성 국제부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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