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오아시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취화선',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의 공통점은 '남근중심주의'? 지난해 제 7회 여성관객 영화상은 세계가 격찬한 작가주의 영화에 대해 강한 비판을 던졌다. '여성관객영화상'을 제정한 사단법인 여성문화예술기획(대표 이혜경·이하 여문)의 시각은 그만큼 두드러진다. '여성주의 시각'에 공감하는 문화예술 전문인들이 한데 어울려 스크린 뒤에 파묻힌 여성의 존재를 앞으로 끌어내 한국영화사를 '다른 시각'으로 쓰고 있는 영화 집단이다. 물론 여문이 영화 전문단체인 것만은 아니다. 여문은 1992년 발족해 연극 '자기만의 방' 공연 이래 영화 미술 연극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그러나 여문이 꾸리는 주요 행사 가운데 우선 손꼽을 수 있는 것은 5회 째를 맞는 서울여성영화제 등 영화 관련 행사다. 박경희 감독의 '미소'를 개막작으로 19개국 120여 편의 여성영화가 11일부터 18일까지 동숭동 일대에서 상영된다. 김소영 변재란 남인영 주유신 등 쟁쟁한 페미니즘 영화 비평·이론가들이 집행위원과 프로그래머로 뛰고 있다.여문이 생각하는 영화의 제자리는 어떤 것일까. 이혜경 대표와 남인영 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변재란 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은 98년 기획한 '공포분담'이라는 주제의 한국공포영화제를 떠올리며 '여성관객의 적극적 참여'가 여문 영화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관객이 수동적으로 영화를 보고 마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마음을 터놓고 수다를 떨며 보는 영화제"(남인영) "그 프로그램을 상영한 전용 극장 이름이 '마녀'였다. 억압된 여성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라는 뜻이었다." (이혜경) "여성 관객들이 평소 하고 싶은 얘기를 영화를 통해 실컷 떠드는 즐거움"(변재란 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은 여문이 기획한 영화제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얌전하게 객석에 머물던 여성 관객, 늘 '성적 약자'로 머물던 여성을 공적 영역의 한복판으로 끌어내자고 이들이 뜻을 모은 것은 92년. 페미니즘을 집단·체계적으로 공부한 첫 세대로 꼽히는 80년대 학번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면서 '새로운 시선의 여성문화운동'이 가능해졌다. 첫 단추는 버지니아 울프 원작을 각색한 연극 '자기만의 방' 공연이었다. '자기만의 방'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이들은 실제로 '자기만의 방'을 얻고 활동 영역과 저변을 확대했다.
이후 '여성의 눈으로 본 세계영화사' 등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힘을 비축, 97년에는 서울여성영화제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혜경 대표는 "제 1회 서울여성영화제 개최 당시만 해도 여성 영화감독이 불과 7명에 불과했다"며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등 재능 있는 감독들이 여기서 배출됐으니 여성영화 인력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셈"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통로를 찾지 못하던 영화 인재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 주었다"(남인영)는 자평도 덧붙었다.
2억원(제 1회 여성영화제)이던 예산이 10억원으로 늘어났고, 작년에만 3만2,000명의 관객이 몰릴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관객이 만들어가는 영화제'라는 독특한 서울여성영화제만의 개성은 계속 살려나갈 생각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쾌걸여담' '오픈 스테이지' 등 관객과 영화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여성주의적인, '다른' 시각의 영화와 관객을 어떻게 만나도록 할 것인가가 이들의 주된 관심사다.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여문은 문화공작소 같은 곳"이라며 "대안 영화의 장, 생산의 장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시각의 생산'이라는 여문의 독자적 철학을 드러낸다. 여성 영화제를 통해 축적한 필름을 각 대학과 지역에 배급하는 '필름 아카이브' 프로그램과 다채로운 장르의 교류를 도모하는 '부엌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사례다. 부엌 프로젝트는 "가사노동에 제한된 부엌이라는 공간을 삶을 만드는 공간으로 삼자는 것"(김소영)이고 "사회적 문화적으로 부엌을 확장시키기"(이혜경)이다. 가을에 열 계획인 '부엌문화제'와 그 작업실로서 대안문화공간이 될 '부엌'의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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