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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36) 흑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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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36) 흑과 백

입력
2003.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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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평택 문산 의정부 동두천 파주 송탄 부산 대구 군산 등 전국에 산재해 있던 미군 부대가 다 나의 무대였다. 거기 나가 기타 치며 노래를 한 번 부르면 나는 단번에 화제의 중심이 됐다. "재키를 모르면 미군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 연주가 동두천에서 잡혀 있다는 소식이 떠돌면 문산에 있던 2사단 소속 미군들이 트럭을 타고 떼로 몰려 와 내 음악을 듣던 일이 당연시 됐다. 나의 기타 연주와 '쇼맨 시프'('쇼맨십'의 당시 표현)를 당할 자는 없었다.미 8군 무대서 일하던 시절, 나는 미군들의 생활정보지 'Stars & Stripes(성조지)'와 여타 잡지의 단골 손님이었다. 인터뷰를 했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영어를 못 하니 그네들이 클럽에 와서 보고 썼던, 일종의 리뷰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보고 미국 본토의 엔터테인먼트사에서 나를 스카우트 하려 편지를 띄워 오기도 했다.

그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였다.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털어 놓은 단장 왈, "네가 빠지면 운영을 못 할 판이라 얘기 안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사 당시 그런 제의를 들었다 해도 나는 한국을 뜨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의 최대 관심은 새 음악을 접하고, 내 음악을 살찌워 나가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 클럽 무대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버티려면 연주력은 물론, 찾아 오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던 대로 세 가지 계층의 군인은 물론, 흑인이냐 백인이냐도 무척 중요한 변수였다.

가장 상류가 백인 장교였다. 나이는 30대 이상, 계급은 대위 이상이었다. 그들은 무슨 곡을 연주하고 있는 지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절대 곡을 신청하는 법이 없는 그들에게는 우리가 알아서 그럴듯하게 분위기만 맞춰주면 OK였다. 자기네들의 우월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음악, 예를 들어 스탠더드 재즈나 세미 클래식 같은 것을 적당히 섞어서 연주해주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보일 듯 말 듯 흔드는 게 그들의 춤이었다. 장교들의 경우는 흑이냐 백이냐가 무의미했다. 그들은 밴드로부터도 우대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받고 싶었던 것이랄까.

이하 PFC(private first class:일등병) 등 일반 사병의 클럽으로 가면 분위기는 판이해 졌다. 록앤롤, 재즈, R& B, 컨트리 등 미국의 대중 음악 전분야가 그들의 애호 장르였다. 클럽에서 일하면서 나는 재미 있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백인은 흑인 음악도 듣지만, 흑인은 흑인 음악만 듣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백인에겐 뭐니뭐니 해도 로큰롤, 흑인에겐 R& B였다.

흑인이 백인 음악을 들으면 그것은 곧 백인에 대한 아부로 통했다. 그만큼 흑인들의 자의식이 강했다고도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볼 때 그들은 분명 약자이지만, 절대 백인에게 수그리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은 흑인 병사들의 생활을 잠깐 들여다 보면 잘 알 수 있다.

흑인들의 독특한 심성이란,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스스로가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우리는 재즈의 선조라는 문화적 우월감이 가장 듬직한 버팀목이었다. 그 같은 사정을 파악하게 된 나는 클럽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게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백인적 재즈(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대표곡인 '테이크 파이브(Take 5)'를 연주해도 백인들은 영 시큰둥해 황당했던 적도 있다.

흑인 병사들은 월급을 타면 본토에 고스란히 송금했다. 그들은 되도록이면 술을 멀리했다. 술을 꼭 마시고 싶은 흑인 병사들은 콜라통에 싸구려 소주 따위를 담아 와 클럽에서 내 연주를 들으며 돌아가며 한 모금씩 마시는 식이었다. 클럽의 주인들에게 그들은 요주의 인물들일 수 밖에 없었다.

군대 생활 도중 흑백간에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면 대개 흑인들이 양보하기 일쑤였다. 나는 흑인들이 싸우는 것은 못 봤다. 싸움이라면 백인들끼리, 그것도 여자 문제 등으로 불거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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