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이 상당히 걱정스럽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워크숍에서 행한 일련의 발언 등을 보고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대통령이 꼭 나와야 했을까부터가 의문이다. 과거 같으면 비서실장이 좌장이었을 그런 행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기야 일선 검사들과도 토론을 주저 않는 대통령이고 보면 반드시 무리라고만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그러나 대통령이 나서는 장소와, 할 말은 대단히 엄선되고, 또 정제돼야 마땅하다. 대통령은 청와대 식구들의 상전이기 이전에 전국민의 어른이다. 청와대의 골목대장이 아니라 4,700만의 대통령인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기자들과 술 마시고 헛소리하고, 나가서는 안 되는 정보를 내보내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 얘기는 듣는 순간 귀를 의심케 했다. 평소 소탈한 그의 성격 탓으로도 잘 설명이 안 된다. 마치 조직사회에서 '오야붕'이 '꼬붕'들을 불러놓고 "너희들 배불리 먹이려는데 흘려?"하는 훈계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노 대통령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화를 낸 유출 정보는 청와대 3∼5급 행정관들에 대한 월급 편법인상 시도였다. 어째서 이런 변칙이 '나가서는 안 되는 정보'인지 알 수가 없다. 일반 공무원들이 느낄 박탈감을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도 묻고 싶다. 대통령은 특정집단의 '오야붕'이 아니라 전 국민, 모든 공무원의 대통령이다. 어떻게 이런 '오야붕적' 발상을 했는지 어이가 없다. 더구나 이런 사실의 유출을 배신감 운운한 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은 또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책잡히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 달라"고도 했다. 속된 말로 "내가 저 놈을 손보려 하니 우선 우리 약점부터 없애도록 하라"는 내부단속의 경고 의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일전불사의 섬뜩한 전의마저 느껴진다.
더욱 이해 못할 일은 노 대통령의 이런 생각에 편승하는 행태다. 대통령이 좀 튀더라도 참모나 각료는 진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는 법이다. 영화감독 출신의 한 장관은 한 술 더 떴다. 특종을 찾으려거든 이제부터는 쓰레기 통을 뒤지라고? 그러면서 그는 "공격을 받으니까 장관직이 재미있고 전의도 생긴다"고 기염을 토했다장관이란 자리가 도전과 응전으로 게임 하듯 즐기는 자리인가. 대개 이런 분들이야말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이 입에 붙어 다닌다. 본업으로 돌아갈 때 가더라도 직무에 경건한 생각을 갖는 것이 공직자의 올곧은 자세일 것이다. 장관이란 자리가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 아무에게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남거든 어떻게 하면 행정서비스를 개선해서 국민에게 봉사할까를 궁리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개혁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적하지 않아도 시급한 과제라는 것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대통령이 연일 나서 나팔수 역할을 하지 않아도 그 당위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마련됐다고 본다. 문제는 시기와 방법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서로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에서 대통령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
일부 언론이 준 상처가 얼마나 깊었으면 그는 장관시절엔 언론과의 전쟁 불사까지 외쳤다. 노 대통령만큼 일부 언론으로부터 시달리고 해코지 받은 정치인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사실이 그러해도 이제 노 대통령은 자세를 바꿔야 한다. 구원(舊怨)이나 한(恨)을 털고 반대편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자신 이상의 현실적인 권력이 또 어디에 있는가. 일부 언론의 '일탈'은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 '서동구 파동'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언행불일치에 따른 민심의 이반이다. 관(官) 주도 개혁의 실패경험은 역사 속에 많다.
지금 대통령 혼자 동분서주하니까 고건 총리는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책임총리제니, 총리를 정점으로 한 국정운영이니 하는 말은 또 구두선이 되고 말았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청산하는 일이 이렇게도 요원한가.
노 진 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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