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잡이와 미드필더의 덕목은 무엇일까.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A매치 데뷔 무대인 콜롬비아와의 평가전(3월 29일)을 보면서 새삼 이 같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골잡이란 결정적인 상황에서 한방을 터뜨려주는 킬러를 말한다. 호나우두를 문전에서 어슬렁거리는 게으름뱅이라고 폄하하는 이도 있지만 그는 먹이를 찾아 나선 맹수처럼 웬만한 득점 찬스는 놓치지 않는다.코엘류는 콜롬비아 전이 끝난 뒤 "100점 만점에 75점 정도"라고 자평했다. 물론 이영표와 김태영 이민성 최성용으로 이어진 포백라인은 대인마크와 지역수비를 적절히 섞어가며 유기적인 협력 플레이를 펼쳤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해도 나는 이날 경기 내용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팬들은 9개의 슈팅이 모두 무산됐다며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을 비판했지만 나는 미드필드의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골을 터뜨리는 건 골잡이의 몫일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축구는 스트라이커의 '개인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콜롬비아 전을 분석하자면 한국 축구의 특장부터 얘기해야 한다.
우선 기동력을 이용한 빠른 돌파와 공간 활용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느린 템포의 남미 축구에 말려든 듯 우리도 덩달아 느슨해져 거세게 몰아붙이는 데 실패했다.
코엘류가 이끌었던 포르투갈 축구도 생각해봐야 한다. 코엘류의 지휘 아래 유로2000에서 4강에 오른 포르투갈은 미드필드에서의 아기자기하면서도 창조적인 플레이가 돋보였다. 피구와 콘세이상 등 월드 스타들이 미드필드를 휘저으며 원톱인 고메스의 득점 찬스를 이끌어내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만한 능력을 지닌 미드필더들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실제로 슈팅이 9개나 나왔지만 시스템에 의한 결정적인 찬스는 전반 설기현과 후반 최성국이 놓친 2,3차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뻥축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롬비아 전은 코엘류의 데뷔전인 만큼 승패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비전과 발전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미드필드에서의 창조적 플레이를 꽃 피우는 코엘류 감독의 조련술이 기대된다. 한국 축구의 장점을 살려나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전 축구대표팀 감독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