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마처럼 얽힌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러시아 가스해법'이 본격 제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나 사할린의 천연가스를 북한을 관통해 남한으로 오게 하면서 화력발전소를 지어 북한의 전력난을 해소해 주자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은 가스를 이용해 만성적 에너지난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스관 통과에 따른 상당한 규모의 외화까지 챙길 수 있다. 러시아는 가스를 팔아서 좋고, 한국은 안정적 가스공급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부시행정부와 가까운 미국의 석유 재벌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할린 가스 유전개발과 북한을 관통하는 가스관 공사 등에 투자하는 것은 남는 장사일 뿐 아니라, 에너지 자원의 선점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엄청난 욕을 먹어가면서도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는 이유가 석유 확보에 있음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지난해부터 북한 관련 세미나장을 떠돌던 이 얘기가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의해 보도됐다. FT는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 보좌관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시베리아나 사할린에서 생산된 러시아산 가스를 북한 화력발전소 연료로 공급하기 위해 러시아와 북한을 연결하는 가스관을 건설하는 방안이 북 핵사태 해결책의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 가스 해법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전 서울을 방문했던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에 의해 잠깐 언급되기도 했고, 러시아는 여러 경로를 통해 적극적 관심을 전달해 오고 있다. 미국 러시아 등 주변 강국과 남북한 모두가 당사자가 되는 이 해법은 모두에게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성사의 관건은 역시 미국쪽에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조건없는 핵개발 포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개발 포기의 대가로 에너지난을 덜어주는 것은 경수로 건설을 약속하면서 핵포기를 다짐 받았던 제네바 합의의 전철을 밟는다는 지적을 받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FT는 "가스관 계획은 아직 초기단계이며, 북한이나 우방국들과 구체적으로 협의되지 않았다"고 했고, 청와대는 라 보좌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로슈코프 러시아 외교차관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는 일부 보도를 부인했다. 가스 해법이 탁상공론으로 끝날지, 아니면 북한 핵 해법의 대안으로 정식 부상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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